유목 부족의 침략으로 노예가 된 덕이는 천신 만고 끝에 전사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먼저 정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정착이란 결국은 원시 사회의 1차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강변과 아늑한 야산 기슭에 마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자연의 일부분으로 묻혀 있던 사람의 무리는 동물적 자연에서부터 분리되어 사회를 이루어 냈던 것이다.
덕이가 태어나고 자라난 갈래 마을은 어느 원시사회에서나 있음직한 원시공동체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씨족 마을의 형태에서 마을 구성원의 분포가 비교적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마을 연합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단계에 있었던 것이 덕이네 갈래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이미 마을 연합에서 열읍의 단계로 넘어가 부족 연합을 이루기 시작한 난하·대릉하 인근과 발해 북방의 여러 부족들. 예를 들면 -조선 예맥 숙신등등-과 같은 정도의 청구족의 변방이었다. 그러므로 동시대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아직 낙후된 곳이었다. 덕이는 국가의 성립이 전혀 불필요한 상태의 지역에서 그야말로 전지와 사람이 화합된 것 같은 행복한 유년과 소년기를 보낸다. 드디어 이 균형과 조화의 세월이 파괴되는 것은 다른 바깥 세상이 이미 의와 같은 조화를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덕이의 삶의 변화는 사람이 이루어낸 가장 이질적이고 원초적인 생활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유목민과 정착 농경민의 갈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이 갈등의 순환은 사실은 정착부족들의 잉여 생산물과, 그들이 더욱 많이 필요로 하게 되었던 농경지로서의 보다 많은 토지, 그리고 교역의 발생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끝없 이 왕성한 팽창 욕구가 자기들과는 이질적인 유목적 삶을 자극했던 것이 먼저였다. (야생 동물의 경우에도 엄격한 영역 싸움은 사실은 살아 남기 위한 노획물의 확보 다툼에서 비롯된다)
덕이네 마을은 유목 부족 동호의 침탈을 받았고, 덕이는 사회의 최소 단위이며 개체와 세상의 조화의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는 가족과 아내를 잃고 타 부족의 피정복 노예로 전락한다. 다른 부족 연맹 지역에 비하여 낙후되었던 갈래말이나 그와 비슷한 지역의 씨족들이 피정복 노예로 떨어지게 되었던 것에는, 덕이가 경험하게 되는 예 땅에서의 하호 생활에서 그 몇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청동기는 농기구가 아니었다! 라는 것은 농기구는 제법 세련되었으나 아직도 돌이나 나무나 뼈를 사용할 뿐이었다. 그러면 어째서 구리의 사용이 그 이전 사회와 확연히 구별시켜주는 원인이 되었을까.
청동기는 무기였다. 동검과 구리창 끝과 구리 화살촉과 투구등속이 동북아의 원시 사회를 일변시킨다.
전쟁 무기의 혁신이 수많은 씨족마을의 뿌리를 뽑아서 새로운 편제로 바꾸기 시작 하였다. 예맥의 고증에서 보는 바와 같은 하호 계층은(고구려 사회에까지 이어지고 더욱 철저해 지지만)바로 침탈되어 재편된 씨족마을들의 피 정복민들 이거나 생산과정 속에서 몰락한 평민 계층들이다. 즉 농기구나 농업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무기에 의하여 생산관계가 재편된다. 무기로 정복하여 집단 노동이 가능해지고 집단노동은 상호라는 상부 지배층을 형성해 준다. 귀족이 형성되고 세습제의 기미가 보인다. 싸움만 전문으로 하는 직업 전사가 출현한다. 상호 계층의 혈연적 확대는 드디어 상호 서로간의 갈등을 낳는다. 따라서 군벌이 형성된다.
덕이가 예에서 전공에 따라 하호에서 백장까지 상승되는 과정은 직업 전사의 형성을 암시하고 있으며 달솔 천호장의 모반은 군벌이 국가 기원에 매우 관계가 깊다는 암시다. 덕이가 겨우 자립의 토대를 마련하여 다시 낙후된 고향 인근으로 돌아왔을 때에, 그는 예전의 삶-중국사에서 흔히 인간의 이상적 세계관으로 예를 드는 요순 이전, 국가 성립 이전의 단계인 무위이화의 세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음을 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조화롭게 감싸 주었던 청구 변방의 씨족 마을들을 산산이 부숴버릴 것이며, 자기가 데려온 하호군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직업 전사의 집단임을 강조한다. 그가 가려는 길은 군벌의 길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성립을 필자는 달솔 천호장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은 식의 일종의 쿠데타로써 시작되었다고 상정해 보는 것이다. 요술 방망이로 뚝딱 건국된 것은 아닐테니까. 자아, 그러면 여러 필요 충분 조건들이 무르익어 가는데 현대에도 누가 칼자루를 잡으려면 사탕 발림의 공약이든 탁월한 정견이든 간에 이데올로기가 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밝 종족 내부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풍습, 원시종교, 제도, 사회적 관계, 구성원의 성격 등 등의 차 이를 다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곰과 호랑이가 굴속에서 어쨌다는 설화에서도 보듯이 이것은 상충된 각 부족의 이질적인 이념들의 충돌을 상징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