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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바로 세우는 ‘국민 특검’이 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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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종훈 변호사 (전 대북송금 사건 특검보)

김종훈
변호사
(전 대북송금 사건 특검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는 참담했다. “이게 나라냐”는 광장의 절규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수사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어제 국무회의에서 공포안이 의결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은 작명부터 잘못됐다. ‘박근혜 특검’이 맞다.

이번 특검법은 유독 특별검사를 판검사 15년 경력자로 한정하는 위헌적 요소도 담고 있다. 대법원장 자격도 그렇게 돼 있지 않다. 또한 특검의 추천을 특정 정당에 위임함으로써 수사 대상자에게 시빗거리를 제공했다. 아울러 특별수사관의 역할을 사법경찰관으로 제한함에 따라 검사 출신 변호사를 특별수사관으로 임명해도 특검 파견 검사의 조서 작성 과정에 입회조차 할 수 없도록 했다. 결국 파견 검사와 검찰수사관만이 수사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는 중요한 잠재적 수사 대상인 검찰 수사가 불가능할 수 있다. 수사 대상의 규모에 비추어 수사 인력과 기간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민심이 두렵다고 하면서도 민심을 외면하고 정파적 이해를 반영한 타협의 산물이다. 이것이 수백만 촛불 민심에 떠밀려 정치권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유일한 성과물인 특검법의 현주소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특검의 사명이다. 특검이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낱낱이 밝혀내 법정에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어찌 국정 농단이 한두 개 법인 설립에 그쳤겠는가. 그 기간이 최근 1년 정도에 한정돼 있겠는가. 지난 4년간 말도 안 되는 인사와 정책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유독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인사난맥,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조차 금기시한 대북·외교 정책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그 이유와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범죄단체인 최순실 일당에게 부역한 공직자들을 솎아내야 한다.

이번 특검은 수사 자체가 임무다. 과거 특검은 대북송금 특검 등 한두 건을 제외하고는 완성된 검찰 수사를 평가하는 역할을 했다. 한정된 수사 인력과 기간 범위 내에서 결론을 내리고 사회갈등 치유, 여론 통합 기능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특검은 미완의 수사 대상을 검찰과 경쟁적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검찰 수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검이 등장했고 특검만으로는 그 많은 수사 대상을 다 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쟁하면서 협력해야 한다. 이 점은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 역시 특검 수사를 조직 재건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검이 검찰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수사 대상이 하나 있다. 검찰 바로 세우기 수사다. 광화문에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지난달 29일로부터 불과 열흘 전 법무부·검찰 간부들은 이 사건을 형사부에, 송민순 회고록에 터 잡은 야당 지도자에 대한 고발 사건을 공안부에 배당해 놓고선 국정감사장에서 앵무새처럼 ‘통상의 절차’ 운운했다. 정치검찰의 민낯이다.

지금 이 순간 청와대조차도 정치검찰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혼란스럽다. 과거 ‘정윤회 문건’ 수사를 왜곡한 정치검사, 이번 수사를 뭉개려 한 정치검사를 수사해야 한다. 정치검찰의 망령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검찰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선의의 검찰 구성원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처럼 검찰이 자기 보호를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특정인을 특검으로 앉히려 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특검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요구나 정치 일정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워낙 방대한 수사가 예상되는 만큼 수사 인력이나 기간이 문제 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국민은 검찰과 특검 수사를 비교할 것이다. 특검이 ‘국민 특검’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 국민은 또 다른 특검이나 이번 특검을 평가하는 특검을 만들기보다는 ‘국민 특검’에게 힘을 실어주는 후속 작업을 할 것이다. 촛불 민심은 정치권으로 하여금 특검의 수사 인력을 늘려주고 수사 기간을 연장해 주도록 요구할 것이다.

특검이 수사를 주 임무로 한다고 해서 사회갈등 치유와 여론 통합의 사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과거 특검들이 형사소추보다는 진상 규명을 주목적으로 한 경우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형사소추 대상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고 국민이 의문을 갖고 있는 사안에 대해선 폭넓게 조사해야 한다.

나아가 사건의 대국민 보고를 규정한 특검법 규정을 적극 활용해 수사 과정을 국민에게 알려 적시에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자문기구를 설치해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것도 특검 수사를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기소편의주의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도 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수·자백한 자는 선처할 것을 권한다.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특검의 권한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국민 특검’의 탄생을 고대한다.

김 종 훈
변호사
(전 대북송금 사건 특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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