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선의로 저지른 악행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선의(善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 대통령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건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 “선의로 도와준 기업.” “문화융성으로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이런 ‘선의의 강변’을 듣는 국민은 복장 터지지만 대통령은 확신범인 듯 보인다. 지난 주말 검찰 공소장이 공개된 후 유영하 변호사가 내놓은 긴 발표문에선 대통령의 분노와 원망이 행간에서도 읽힐 정도였다.

사금고식 재단 설립이 선의라는 대통령
결과적 악행에 책임지는 모습 보이기를

도대체 이 같은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검찰이 밝힌 그의 범죄 혐의는 ‘권력을 활용한 사익의 추구’다.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에서 돈을 뜯어 만든 재단을 측근들이 사금고처럼 활용하려 했던 점, 정부 혹은 기업 예산에 측근의 사업을 얹어 사적 이익을 추구한 일. 세금이나 남의 돈으로 사적 이익을 꾀하는 것을 우리는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범죄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상식은 달랐다. 그의 삶이 그런 상식의 어긋남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첫 공적 생활은 퍼스트 레이디였다. 스물세 살 때다. 당시 그가 한 일은 새마음봉사단이라는 관제 사회단체를 만들고 기업가들에게서 운영자금을 모금한 것이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당시 60여 명의 재벌 기업인에게서 인당 2000만~5000만원을 모았단다. 집 한 채에 500만~600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청와대를 떠난 후에도 그의 삶은 상식과 동떨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생계비 명목으로 6억여원을 줬고, 모 기업 회장은 성북동에 공짜로 집을 지어 줬다. 20대에 영남대·육영재단·정수장학회·한국문화재단 등의 이사장을 맡아 재단을 계열사처럼 거느린 수장이 됐다. 그러나 제대로 운영하진 못했다. 영남대와 육영재단에선 부정부패와 인사 스캔들로 내부 분규가 일어나 불명예 퇴진했다. 모든 사달의 이면엔 최태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나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그에게 재단은 익숙한 사업 분야가 됐는지 모른다.

재단은 우리나라 대통령 대부분이 사랑했다. 대통령가의 재단 설립 모델을 만든 건 박 대통령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였다. 69년 설립한 육영재단. 어린이 복지를 목적으로 육 여사가 1000만원을 내고 기업과 정부·지방자치단체가 3억원 가까운 돈을 내 만들어졌다. 당시 설립 의도는 선의였다고 생각한다. 하나 이후 정권들의 재단사업은 정권과 기업 간 ‘정경유착의 고리’로 발전했다. 정권의 국정과제 혹은 대통령 관심사항 명목의 재단·기금 등에 기업들은 돈을 내며 ‘준조세’ 혹은 ‘정권보험료’라고 여겼다.

대통령 측이 “역대 정부도 다 한 일”이라고 항변한 건 이에 근거한다. 하나 이전 정권에서 단죄된 불법 정치자금을 빼고 공개적으로 재단사업을 벌인 김대중 정부 이후 사례에 비춰 보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청년희망펀드’ 정도가 과거 재단 수준이다. 사금고 성격의 미르·K스포츠재단은 너무 나간 거다. 유 변호사는 “재단 운영구조상 특정 개인의 사유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아니다. 과거 전직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재단들을 농단했던 사례를 보라. 물론 다른 대통령들의 재단도 선의로 포장됐으나 의도는 미심쩍었고 퇴임 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급함과 사심으로 추진된 경우가 많아 지속 발전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대통령들의 재단 설립을 금지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래서 든다.

선의. 연쇄살인범도 살인 동기만은 정의감으로 포장한다. 모든 역사적 악행도 선(善)의 이름으로 집행됐다. 개인의 악행들도 대개 악의가 아닌 선의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결과다. 국가원수는 의도가 아닌 결과를 관리해야 한다. 옛말에 악행을 저질렀어도 이를 두려워할 줄 알면 선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이 경구처럼 자신의 선의가 실은 악행이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