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속의 「지리산」은 우리역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리 역사속에서 가장 치열한 민족적 대립의 영역이었던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문학작품은 어떤 것이 있으며, 작가는 과연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일까. 최근 소설가 박태순씨는 지리산이 분단구조에 미친 영향과 그것이 문학속에 어떤 방식으로 용해되었는지 분석한 논문「지리산과 문학」을 『문예중앙』봄호에 발표하고 그 민족사적 의미를 밝혀 문단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리산 및 그 산자락과 이어지는 평야지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자연주의작품 제외)씌어지기 시작한 것은 50년대 말부터며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시기는 70년대 이후. 초기에는 신동엽·김광섭 등 주로 시인들이 민족의 아픔을 노래했으나 70∼80년대는 대하장편시대로 넘어와 이병주씨의 『지리산』을 비롯해 박경리씨의 『토지』, 김원일씨의 『노을』『겨울골짜기』(출간예정), 조정래씨의 『태백산맥』등이 이미 집필되었거나 현재도 계속 집필중이다.
59년 신동엽은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라는 서사시를 통해 「…내 동리 불사른 사람들의 훈장을 용서하기 위하여. 코스모스 뒤안길 보리사발 안은채 죽어있던 누나의 사랑을 위하여…」라고 민중의 고난을 기록했으며, 역시 같은해 발표한 「진달래 산천」이란 시에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산으로 갔어요/뼈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이라고 노래해 동족전쟁의 아픔을 그렸다.
또 김광섭은 68년에 발표한 「산」이란 시를 통해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사람 사는 골이 어수선하면/도루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고 지리산이 겪은 참담한 아픔을 초극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70년대 이후로 들어오면서 박상륭·송기숙·한승원·윤흥길·문순태·최일남·오찬식·노순자·김성동등 많은 작가들이 향토문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농촌공동체 사회의 붕괴를 통해 지리산을 다양하게 형상화해왔다.
이중 이병주씨의 장편『지리산』은 일제에 대항한 최초의 빨치산 이후 48년 여순 반란사건과 6·25동란중 거대한 군사기지화해 동족간의 피나는 격전강장로 전락한 비극의 현장을 실록적인 역사의 재구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경리씨의 『토지』는 지리산록중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한 평사리 일대를 무대로 하여 봉건경제의 지주층이 식민자본의 침략에 의해 붕괴되어가면서 그것이 다음 단계의 근대민족운동의 줄기를 어떻게 형성해가고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김원일씨는 『노을』『불의제전』이래로 꾸준히 분단극복의 문학을 전개해왔는데 최근 발표한 『적』『내부의 적』등 지리산 빨치산과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을 다룬 작품들을 모아 장편『겨울골짜기』를 올봄에 출간할 예정이다.
조정래씨는 계속중인 장편『태백산맥』을 통해 조계산·백운산 일대의 농촌공동체의 붕괴 과정을 여순 반란사건으로부터 정밀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최근 시인 이시영·박용수·이영진·정규화·박몽구씨 등에 의해서도 지리산은 민중사적 염원으로 노래되고 있다.
논문을 집필한 박태순씨는 『수난의 땅 지리산을 추적하다가 곧 그 산이 우리역사임을 깨달았다』며 『비극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안고 있는 지리산이야말로 우리민족사의 표본』이라고 밝혔다. <양헌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