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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먹으러 갈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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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키즈&틴즈팀장

이경희
키즈&틴즈팀장

지난 토요일 엄마가 굳이 외출하는 게 이상했지? 네가 사람 많은 데 가기 싫다고 해서 네 동생만 데리고 나갔잖아. 민폐는 아닐까 고민했는데, 엄마처럼 유모차 끌고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이 꽤 많더라. 지상으로 올라가 보니 촛불과 깃발을 든 사람들이 도로에 앉아 있었어. 모두 화가 나서 나온 사람들이지만 현장은 축제처럼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어.

누군가 촛불을 나눠줘 엄마 하나, 동생 하나 밝히고 시청광장까지 갔지. 그런데 네 동생이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다는 거야. 북창동 어느 식당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나올 땐 재료가 떨어져 손님을 못 받을 정도로 붐볐어. 창조경제의 현장이었지. 고기 먹이려고 집회에 갔나 자괴감이 들긴 했지만 거리로 나서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엄마가 동생 낳고 쉬었을 때 기억 나니? 네가 맛있는 간식 먹고 싶다고 해도 “회사에 안 가니 돈 없어서 못 사준다”고 했잖아. 참다 못한 네가 “엄마 빨리 회사 가서 돈 벌어와!”라며 엉엉 운 덕에 복직하기가 수월했단다. 세상의 엄마, 아빠들은 그렇게 밥 한 끼, 고기 한 점 먹이려고 자식 보고 싶은 것도 참고 일을 해.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이 센 대통령은 제대로 일은 안 하고 권력과 돈을 40년지기 친구랑 주변의 몇몇 사람만을 위해 썼대.

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어. 어떤 재수생 언니가 시험을 치다 쫓겨났어. 그 언니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면서 실수로 자기 전화기를 넣어놨거든. 일부러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규정상 부정행위라서 오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지. 그런데 대통령 친구 딸은 1년에 학교를 17일만 나가고 성적은 꼴찌였는데 학생부를 조작하고 대입 규정까지 바꿔가며 명문대에 합격했대. 그 밖에도 그들이 잘못한 일은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롭게 드러나고 있어. 국민이야 죽든 말든 권력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던 게 엄마는 제일 화가 나.

그래서 황금 같은 휴일이지만 기어이 나섰던 거야. 주최 측 추산 85만 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100만 명을 채우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어. 법 앞에서 모두 평등해야 한다고, 누구든 국민이 빌려 준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 사리사욕을 챙겨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거든. 갓 세상에 나서는 젊은이에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은 100만 명이 모여 내려가라고 외쳐도 꿈쩍 안 하는 나라는 혼이 비정상인 것 같아. 계속 그런 나라인 채로 내버려 둘 순 없지. 나중에 네가 2016년의 이야기를 검인정 역사 교과서로 배우며 “엄마는 그때 뭐 했어?”라고 묻는다면 이 글이 그 대답이야.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같이 고기 먹으러 가지 않을래?

이 경 희
키즈&틴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