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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北核 다자회담 주도권 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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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러시아는 북한이 6자회담 수용의사를 밝힌 데 대해 아주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공식적인 북핵 협상 과정에서 밀려나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공개 성명을 발표하거나 미국에 직접 통보하는 형식이 아니라 박의춘(朴義春) 주(駐)러 대사를 러시아 외무성으로 보내 북한 지도부의 결정을 전달한 외교적 배려에 매우 만족해 하는 분위기다. 러시아가 북한의 6자회담 수용을 다른 당사국에 앞서 발표함으로써 외교적 선제권을 쥘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유리 페도토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북측 입장을 통보받은 자리에서 "평양의 건설적 결정에 대해 만족한다"며 즉각 환영의사를 표명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회담형식은 중요하지 않으며 관련 당사국들이 북핵 문제를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론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3자회담(미국, 북한, 중국)이나 5자회담(미국, 북한, 중국, 한국, 일본)이 본격 논의되면서 러시아가 배제되는 데 대해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는 것이 러시아내 외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더구나 지난 93-94년 1차 북핵 위기 때도 4자회담에서 제외된 아픈 경험이 있어 이번 협상 과정에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특히 노무현(盧武鉉) 정권 출범 이후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한국이 대북 협상에 모스크바를 참여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데 대해 못내 섭섭해했다는 지적이다. 노대통령의 8월 러시아 방문 계획이 무산된 것도 이 같은 섭섭함이 배경이 됐다는 설명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6자회담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된 데는 중국의 주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있다. 러시아의 유력 일간 '코메르산트'는 "한반도 문제 협상에서 북한의 유일한 '변호인'으로 남는 것에 부담을 느낀 중국이 러시아를 다자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중국이 미국과 북한에 6자회담을 강력히 제의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도 중국이 지금까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러시아와 깊은 논의를 계속해 해왔다고 밝혀 이같은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미국이 러시아가 참여할 경우 대북 설득 작업에 한층 탄력이 붙을 뿐 아니라 앞으로 다자회담 과정에서 논의될 책임분담이 더욱 수월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러시아를 참여시키자는 중국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은 구소련의 지원을 받아 주요 핵시설을 건설한 만큼 앞으로의 협상 진전에 따라 이 시설들을 해체해야 할 경우 러시아의 경험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도 우호적인 러시아를 협상에 참여시키길 원했다는 것이 러시아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북-미 직접 대화가 어렵게 되고 미국의 다자회담 주장이 대세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에서 중국이 끝까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 출범 이후 매년 양국 정상회담을 갖는 등 러시아와 특별한 신뢰관계를 구축해 왔다.

모스크바=유철종 러시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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