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저의 복병…「원자제난」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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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저라는 원군에 힘입어 치닫던 수출업계에 뜻하지 않던 복병이 나타났다.
수출물량이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원자재·부품의 수요가 급증하자 원자재·부품구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수출이 잘된다 싶으니까 새로 참여하는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 수요를 팽창시키고 있고 이에 질세라 업체마다 필요분 이상을 확대해 두려는 가수요경쟁까지 겹쳐 이전투구의 양상마저 띠고 있다.
또 이같은 국내사정을 눈치 챈 일부 원자재공급 외국에선 그동안 순순히 대주던 원자재가격을 턱없이 높여 부르거나 이미 올려놓아 우리업체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원화절상으로 가뜩이나 채산성이 악화되고있는 판에 제품원가마저 높아져 자칫 잘못하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지경에 몰려있다.
원자재구득난은 거의 전업종에 걸쳐 있지만 특히 우리의 주력수출업종인 섬유·전자·철강·석유화학쪽 매우 다급한 상황이다.
주요품목별 원자재구득난실태를 점검해 보면-.

<섬유>
전자제품과 함께 최대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는 섬유업계에는 적색등이 켜졌다. 아크릴방적사·면사·나일론사등 모든 원사공급이 절대부족하기 때문.
스웨터를 비롯, 연간 5천만달러어치를 실어내는 군자산업은 월15만∼20만파운드의 아크릴방적사를 필요로 하는데 무리없이 확보가 가능한 물량은 10만파운드 정도에 그쳐 「근근이」버텨가고 있는 실정.
이에따라 로컬L/C를 개설해놓고도 원사를 공급받지 못해 2∼3건중 1건은 취소되거나 다음달로 이월된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규모가 큰 고정 거래선이어서 이정도지 중소업체나 신규참여는 아예 로컬L/C를 열어주지 조차 않아 주문을 받고도 수출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는 것이 이회사 원자재구매담당 장태일씨의 설명.
양말로만 연간 1천3백만달러어치의 수출실적을 올리고있는 경덕상사의 황준기차장은 『태광산업과 10년이상 단골로 거래해온 덕택에 원사를 우선적으로 공급받고 있다』며 『원사메이커들이 가수요방지책으로 전년실적에 비례해 수요업체에 분배하기 때문에 신규업체는 엄두조차 못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면사쪽도 빡빡하긴 마찬가지.
내수와 수출을 겸하고 있는 백양의 경우 코마사가 월7천5백고리 (1고리=1백81·44kg) 정도 필요한데 월1천고리씩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해외주문을 다 소화해내지 못해 가급적 가격조건이 좋거나 장기계약쪽을 우선하는등 이른바 선별수주현상도 있다고 한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가격도 작년초 고리당 6백달라에서 지금은 7백60달러선.
또 엔고로 홍콩·동남아족바이어들이 대거 수입선을 한국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최근 특수경기가 일고있는 나일론사는 종전 야드당 30센트하던 것이 47센트까지 올라 60%이상 값이 폭등하고있다.

<철강>
철강류중 핫코일은 을해 내수6백38만t과 수출 1백46만t등 7백84만t의 수요가 예상되고 있으나 국내공급능력은 5백25만t으로 공급난이 심화돼 있다.
결국 부족분 만큼 일본에서 들여다 써야하는 형편. 그러나 포철의 내수공급가가 t당2백83달러인데 비해 일본산은 3백32달러로 비싸 수입을 기피하고있다. 그렇지만 광양열연공장(2백63만8천t규모)이 준공되는 3월부터는 이같은 공급난에 숨통이 트일 전망.
포철·연철·동부제강등에서 생산하는 냉연강판도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자동차·가전쪽이 지난해부터 수출 및 내수호조로 물량이 달리는데다 수요가 계속 느는 추세여서 지난해에만 23만t을 수입해 썼는데 당초4월로 예정됐던 포철제2공장이 이달말께 준공될 경우 수급은 다소 안정을 찾을 전망. 그러나 1백만t가량이 부족, 주로 일본에서 수입해 쓰는 동안 일본업체들이 우리사정을 환히 들여다보고 작년에 4차례에 걸쳐 t당 30달러를 올린데 이어 올해에도 7달러를 또 올려 우리업계를 곤혹스럽게 만들고있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
중후판은 지난해 조선쪽의 불황으로 남아돌다가 최근 수주가 급격히 늘면서 물량이 달리기 시작, 부족분 50만t의 수입이 불가피하지만 수입가격이 국내가에 비해 워낙 높아 이도 큰 문제.
메이커인 포철측은 그렇다고 급작스럽게 증설을 할수도 없는 처지여서 지난해 70만t을 수출했던 것을 올해는 40만t수준으로 줄여 국내공급용으로 돌려쓰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전자부품>
첨단핵심부품보다는 컨덴서·저항튜너·일부 반도체등 범용부품의 공급이 달리는 형편.
가전3사에 납품하는 삼화콘덴서의 경우 수요가 급증, 작년초 월9천만∼1억개 생산하던 컨덴서를 작년말부터 1억5천만개 규모로 늘렸지만 아직도 공급이 타이트하다는 것이다. 삼화측은 『증설을 할테니 몇년간 수요를 보장해달라』 고 요구하고 있지만 수요업체쪽에서는 경기기복이 심해 선뜻 응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호황이 오래갈수록 공급난이 심화될 전망.
수요업체들은 현싯점에서 필요한 만큼의 물량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자 저마다 일단 여러곳에 주문을 내놓고있는데 결국 가수요까지 경치는 셈이어서 별다른 대책조차 없다는 것이 이홍천전자공업진흥회이사의 분석.

<석유화학>
플래스틱가공업계의 경우 전반적으로 수요는 20∼30%가 늘어났으나 원자재 부족으로 가동률은 70∼80%선에 머무르고 있으며 일부품목은 50%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원인은 폴리프로필렌 (PP)·고밀도폴리에틸렌(HDPE)등 기초원료의 절대부족 때문. 현재 PP는 연간 2만∼3만좌이, HDPE는 5만∼6만t이 부족한 실정인데 수입가가 국내공급가에 비해 t당 10만원이상 비싸 수입도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쪽 얘기다. 게다가 PP의 정우 t당 5백50∼6백달러였던 국제가가 지금은 8백달러선이며 계속 오름세가 지속될 전망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업종과는 달리 유화쪽은 이같은 원료생산공장 하나를 건설하는데 4∼5년씩 걸리는데다 나프타분해공장을 동시에 건설해야하는 어려움이 뒤따라 유공과 유남에틸렌이 확장하고있는 나프타분해공장 건설이 끝나는 오는 89년말에나 근원적인 대책이 설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수급에는 별문제가 없으나 피혁·제지쪽은 국제원자재값이 지속적인 상승세에 있어 수출쪽에서 채산성을 맞추지 못해 고전할 전망이다. <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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