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바람 일으키고 퇴임하는 김은호 대한변협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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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변호사는 바람을 일으겨야 합니다. 불의가 득세할때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부천서 성고문사건」·「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등에서 목청을 높였고 「고문추방운동본부」설립과 첫 「인권보고서」 발간, 대법원장 용퇴건의등 국민들의 기본권 신장과 법조계 발전을 위해 앞장서왔던 김은호대한변협회장 (69)이 21일 2년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김회장은 지난해봄 당시 논의조차 금기로 되어있던 개헌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변협의 개헌안을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했고, 최근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비롯해 즉결심판법·사회보호법·소송촉진특례법등 국민기본권 침해우려가 있는 20여가지 법률의 개정안을 마련하는등 큰 발자취를 남겼다.
별명이 「뚝심」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게 강점이지만 풍부한 경험으로 무리를 하지 않아 흔히 김회장은 60년대 대한변협을 이끌어왔던 고이병린변호사와 견주어지기도 한다.
퇴임을 하루앞둔 20일 김회장을 서울충무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요즈음 「법대로」 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당국은 시민들이 법질서를 어긴다고 하지만 시민의 소리를 막는것 자체가 법질서에 어긋나는 일이지요. 법집행기관이 솔선해서 법을 지키고 공정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쓴약을 달게 받아야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너무 정치적인 활동을 한다고 당국의 눈총을 받지는 않았읍니까.
▲인권문제에 야당이 공동활동하자는 제의를 해왔지만 거절했고 고문추방본부의 운영위원 20명도 정치색있는 인사는 일체 배제시키도록 했읍니다. 국민의 기본권신장에 관한 변호사들의 건의나 성명을 모두 정치적 활동이라고 몰아붙이면 안됩니다. 앞으로도 변호사들은 인권문제에 대해 더욱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전례없이 대한변협이 활성화되고 사회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데….
▲ 「불의가 득세할때 침묵하지 않고 인권옹호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형극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 제가 회장출마때 내세운 공약이었습니다. 인권옹호는 변호사의 기본적 사명이고, 저는 이를 위해 살아 움직이는 단체를 만들고자 더도 덜도 하지 않았읍니다.
-특히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후 변협이 공청회를 열고 고문추방운동본부를 설치하지 않았읍니까.
▲선진국으로 향하는 마당에 일제의 못된 유산인 고문이 횡행한다는 것은 국민의 수치고, 야만이라고 비난받아도 할말이 없지요. 60년대부터 정권연장을 위해 인권침해가 시작된 것이 우리현대사의 비극입니다.
-고문근절을 위한 좋은 방법은 없읍니까.
▲정부가 결단과 의지를 보여야합니다. 유보조항없이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해야하고…. 수사기관은 물증 없이 강제로 자백부터 받아. 내는 타성에서 1백80도 전환해야하며 피해자도 보복을 두려워말고 과감히 폭로·고발해야 합니다.
-검찰이나 법원에 대해 하고싶은 말은.
▲검찰은 범법자 처단이란 반쪽의 기능만 수행하고 인권옹호직무는 소홀히 하는것 같아요. 김근태사건·부천서성고문사건의 경찰관불기소처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법관은 사법권독립을 쟁취하는 자세로 법과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합니다. 지금은 법에 따른 재판만 있고 양심에 따른 재판은 없다고 봅니다. 「현재의 사법부에 대해 기대할게 없다」고 항소를 포기한 이돈명변호사사건을 교훈으로 삼아야합니다.
-그동안의 성과나 보람은.
▲회원권익등 모두가 O점이고 인권문제는 30점쯤 될까요(웃음). 수많은 제도개선·성명서가 모두 메아리도 없이 끝나 버리더군요. 다만 변협인권위원변호사들의 활동은 감동적이고 헌신적으로 평생잊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공수래 공수거」란 느낌입니다.
그의 타협을 모르는 청빈은 유명하다. 고위층과의 오찬장소에 「장관은 자기차로 가는데 변협회장은 버스타고 오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끝내 불참한 적도 있었다. 32년째 변호사로있으면서 6·3사태, 김두한의원오물사건, 김형일의원내란협의사건, 민비연군재사건등을 맡았다.
안올라간 산이 없을 정도의 등산광.
2남3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서울마장동의 연탄을 때는 20평짜리 조그마한 국민주택에서 20여년째 부인손수명여사(70) 와함께 살고 있다. 경북영양출신. <김 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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