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추진하던 TPP, 폐기 수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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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규모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TPP는 사실상 죽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TPP의 폐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공약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타결된 TPP는 미 의회 비준만 남겨놓고 있었다.

트럼프 당선이 TPP를 응급실로 싣고 왔다면, TPP 사망은 의회가 결정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다. 오바마 재임 중 마지막이 될 '레임덕 회기'에서 처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원 리더인 미치 멕코널(공화당)과 척 슈머(민주당)은 TPP 비준안을 트럼프 정부 출범 시까지 상원에서 다루지 않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취임 후 미 정부 차원의 TPP 폐기만 남은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도 손을 들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TPP의 마지막 절차는 의회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불참은 TPP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협정 발효를 위해선 12개국 중 6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이들의 국내총생산(GDP) 합계가 12개국 GDP 총합의 85% 이상이어야 한다. 미국의 GDP 비중은 60%에 이른다. 미국이 빠지면 TPP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 한가지 방안은 발효 조건을 바꾸는 길이다. 멕시코가 적극적이다. 일데폰소 과하르도 비야레알 멕시코 경제장관은 지난 10일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이 협정을 발효할 수 있도록 조항을 재검토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없는 TPP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TPP의 경쟁 다자 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서두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RECP엔 어차피 미국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7개국은 TPP와 RCEP에 중복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RECP에만 참여 중이고, TPP엔 빠져있다.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은 “TPP 붕괴로 생기는 공백을 누군가가 메우게 될 것”이라며 “RCEP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도 RCEP 조기 타결에 적극적이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19일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RECP의 미타결 쟁점 절충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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