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바짝 차리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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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4 면

중국의 요(堯)임금이 어느 날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궁금해 암행을 나갔습니다. 길을 가다가 한 노인을 만났죠. 노인은 푹신한 건초가 깔린 양지 바른 곳에 길게 드러누운 채 한 손은 배를 슬슬 어루만지고 다른 손은 땅바닥에 툭툭 까딱까딱 박자를 맞춰가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죠.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돌아와 쉬네.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농사(農事)지어 내 먹으니, 임금이란 존재가 내게 무슨 소용이리오.”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불리던 요순시절, 지도자의 위상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유래입니다.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에 대해 한 마디씩 안 하는 사람이 없는 이때, 지구에서 가장 힘센 나라의 주인이 놀라운 인물로 바뀌었습니다. 북쪽의 짜르와 동쪽의 황제와 남쪽의 쇼군(將軍) 그리고 바로 위에 어떤 ‘왕자님’까지,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의 수장들은 하나같이 간단치 않은 인물입니다. 태평성대의 한 시절은 이제 완전히 지나간 듯 합니다.


심야에 TV채널을 돌리다 정말 오래간만에 KBS-2TV ‘개그콘서트’를 보았습니다. ‘빼박캔트’라는 코너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친구가 무심한 척 던지는 엉뚱한 질문에 “정신 바짝 차리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더군요. 아무리 ‘정답’을 말해도 결국 맞고야 마는 주인공의 모습에 이상하게 웃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되겠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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