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건축 77%가 면허대여 공사|기획원발표 건설업 부조리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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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기획원은 9일 부실건설공사를 막기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건설공사제도개선 및 부실대책」이라는 총4백37페이지 까리 장문의 보고서를 퍼냈다. 이 책자는 면허· 입찰· 계약·하도급· 시공·감리 등 각 분야에 걸쳐 앞으로 시행될 개선책과 함께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부작용과 부조리를 유형별로 실례를 들어가며 자세히 적고 있어, 이를테면 국내 건설업 사상 처음 나온「건실 부조리 백서」라 할만하다.
건설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아직 정부가 스스로 특정분야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제도적인 잘못을 이처럼 솔직하고 자세하게 「폭로」 한 일은 일찌기 없었다.

<한해 17건 사고 팔아>
○…지난 74년부터 과당 경쟁을 이유로 건설업 면허의 신규발급이 중단되자 「면허대여」 가 성행하고 기존면허에는 웃돈이 얹혀 거래됐다.
78∼85년간 건설업 면허가 사고 팔린 건수는 모두 1백34건으로 한해 평균 17건 꼴.
또 85년 감사원의 감사 결과 82∼84년간 서울 등 6대도시의 민간건축 총3천6백18건 중 76·7%나 되는 2천7백75건이 「면허대여」에 의한 공사였다. 총 공사비의 2∼3%에 해당하는 댓가를 치르고 무면허업자가 면허를 가진 업체의 이름만 빌어 공사를 한 것이다.
또 감사대상 54개 건설업체 중 10개 업체는 본업인 「건설시공」은 제쳐놓고 아예 「면허대여」를 주업으로 삼고 있었다.
면허대여의 일종이지만 웬만한 건설회사는 「도급상무」라는 임원 아닌 임원들을 두고 있기도 하다.
도급상무들은 다른 일은 없이 부지런히 공사만 따온다 .공사를 따면 공사비의2∼3%를 회사에 주고 나머지는 혼자서 다 알아 처리한다.

<충분한 계획 없이 삽질>
○…정부가 대형공사를 구상할 때부터 문제점은 이미 배태된다.
합리적인 장기 종합계획없이「정책적 배려」가 앞세워지거나 관계부처 간의 협의, 재원조달계획 검토 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일단 삽질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88고속도로와 시화지구 간척사업 등 초대형 프로젝트가「경제성」보다 「정책적 배려」가 앞 세워진 대표적인 예로 지적됐다.
평택의 LNG (액화천연가스) 인수기지 건설공사는 애당초 LNG탱크선의 입출항 항로가 잘못 선정되었다가 나중에 뜯어고쳐졌으며, 여수 공설운동장 공사는 12억원을 들여 땀을 사고 착공까지 했다가 장소가 적당하지 않다 하여 다른 곳을 또 사려고 찾고 있는 중이다.
탄천 하수처리공사(서울시)와 성남시 하수처리공사(성남시), 성서 공단공사(대구시)와 논공 공단공사 (토개공)등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들인데도 관계기관끼리 충분한 협의가 없어 서로 부닥치는 곳이 많은 사업들이다.
이밖에 호남선 복선건설· 서울남부 화물기지건설(철도청)공사 등 수많은 정부공사가 재원조달 계획이 사전에 충분치 못해 공기를 보통 2∼3년씩 연장하고 있다.
○…입찰을 하고 계약을 맺을 때도 제도적인 모순은 여전하다.
80∼84년까지의 정부 발주공사 중 매년 60∼68%의 공사가(건수기준) 경쟁계약이 아닌 수의계약이었다. 그 이유의67%가 「하자책임 불분명」 이다.
다시 말하면 계속 이어지는 공사인데 먼저 공사한 업체와 나중에 공사하는 업체 중 어느 업체가 하자보수의 책임을 져야하는지 모를 일이 생긴다는 이유로 첫 번 공사만 따면 나머지 공사까지 줄줄이 따내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추가 부담경비 29가지>
○…경쟁을 제한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예컨대 견적을 내고 입찰하려면 충분한 견적기간을 주어야하고 누구나 설계도면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기간을 짧게 해놓고 그 틈에 설계도면을 「예쁜 업자」에게만 보여주는 일이 있다.
모든 공사는 의무적으로「현장설명」 과정을 거치게 되어있는데 여기에 참석하지 못하면 입찰자격이 아예 없어지게 되므로 업체들끼리 폭력배들을 동원해 경쟁 회사의 출장사원을 잠시 붙잡아 두었다가 풀어주는 일도 있다.
몇몇 업체들끼리 돌아가며 공사를 따는 담합행위도 흔한데 이때 미리 예정된 낙찰자를 「진랑」 (신랑이라는 말을 은어화하기 위해 진랑으로 발음)이라 하며 「진랑」은 담합에 끼지 못한 다른 업체들에 무마비 조로 「떡값」을 집어주는 게 관례다.
이 같은 떡값뿐 아니라 공사를 딴 시공자는 설계에도 없는 추가공사를 새로 떠맡거나 성대한 준공식 행사비용을 부담하거나 하는 등의 음성적인 부담을 더 안아야 한다.
그만큼 공비를 깎아 먹는 것은 물론이다.
이 같은 추가부담경비의 종류가 공사 1건에 평균 29가지나 된다.
또 불법하도급 (무면허 전문건설업체의 하도급)과 하도급가격 후려치기 (중부고속도로 3차 사업의 경우 하도급 액은 공사 예정가격의 61%에 불과)는 하도 흔한 일이라 별 이야깃거리도 못된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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