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권 대·소국 '불황갈등'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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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재정과 금리정책에 관한 통합 경제운용을 놓고 유로권 내 강대국과 소국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재정적자 폭을 확대하고 금리도 추가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자 네덜란드와 그리스 등은 유로권 내 작은 나라들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로권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2001년부터 금리정책을 관장하고 있으며 각국의 재정적자 폭도 1999년에 세워진 재정건전화협약을 통해 국내총생산(GDP)의 3%가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로권 국가들이 동일 화폐권 내에서 안정과 성장을 같이 지켜내기 위해 약속한 것이다.

네덜란드의 헤리트 잘름 재무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재정적자가 3%를 넘어서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를 제재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초래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의 니코스 크리스토둘라키스 재무장관도 지난달 29일 "협약을 중단한다면(독일.프랑스처럼) 큰 적자폭에 시달리는 나라들 뿐 아니라 역내 다른 나라들도 큰 충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아일랜드.벨기에와 같은 나라들은 유럽위원회가 협약을 어기고 있는 독일.프랑스 두 나라에 벌금을 매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실업과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재정적자 규모는 내년까지 3년 연속 GDP의 3%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재정건전화협약이 안정만 중요시하다 보니 성장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협약을 수정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이 협약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화 강세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지난달 "강한 유로가 독일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ECB의 '유로화 강세 방치'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6월 2%로 낮춘 기준금리를 더 낮춰서라도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게 슈뢰더 총리의 주장이다.

현재 2%인 ECB의 기준금리는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독일에는 높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은 아일랜드와 같은 나라에는 낮은 수준이다.

재정적자폭을 확대하고 금리를 다시 낮출 경우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는 시중에 자금이 지나치게 풀려 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커진다. 경제사정이 제각각인 국가들이 금리와 재정정책을 함께 운용하려다 보니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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