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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0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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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어떤 지방에서는 전족대회 하루 전에 여자들이 발을 빨갛게 물들여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고 애를 쓰기도 하였다. 봉선화를 따서 빻아 즙을 만든 후에 명반을 섞어 발에 바른 다음 사향을 넣어 붕대로 단단히 매어두면 그 다음 날 발 전체가 빨갛게 봉선화 물이 들었다.

맨발이 드러나면 간음 현장이 들키기라도 한 듯이 치욕으로 여기던 여인들도 전족대회 날만큼은 마음껏 자신의 발을 자랑하였다.

그런데 여인의 발이 드러나는 것을 여전히 꺼리던 광서 횡주 지방에서는 전족대회를 보름이 사흘 정도 지난 달빛 아래서 치르기도 하였다. 아직도 보름달 기운이 남아 있는 달빛이 집집마다 죽렴 아래 드러난 여인의 발들을 비추면 더욱 운치가 있었다. 달빛을 받아가며 남자들이 여인의 발을 만져보는 광경은 대낮에 그러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색정적이었다.

운남 통해 지방에서는 전족대회가 변형되어 세족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성의 서쪽에 있는 어느 절 앞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매년 3월이면 여인들이 몰려와 그 연못에서 발을 씻었다. 그때 구경꾼들도 몰려와 연못을 빙 둘러싸고 여인들의 발을 일일이 품평하였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여인들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발을 위로 들어 보이기까지 하며 정성스레 씻었다. 중들도 따라 나와 눈을 굴리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금련은 지금이라도 전족대회에 나가면 일등인 왕상을 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여 뭇남성들의 주의를 끈다고 하더라도 서문경이 금련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금련은 발을 씻다 말고 저절로 한숨이 나오며 시가 읊어졌다.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않으나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네

문에 기대어 발 아래 서서 기다리나

마음은 우울해지기만 하네

금련은 발을 다 씻고 붕대를 다시 감고 버선과 신발을 챙겨 신고는 시에서 읊은 대로 문에 기대어 발 아래 서 있었다. 그런데 하늘의 도우심인가, 서문경의 하인 대안이 겨드랑이에 무얼 끼고는 말을 타고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대안아, 오랜만이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

금련은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태세였다.

"나리 심부름으로 현청 관리에게 이걸 전해주려 가는 길입니다. 수비부 그 관리 이런 거 좋아하지요."

"그런데 서문대인은 왜 이리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 거냐? 새 부인을 얻었어도 그렇지 너무하는구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린다(容易得來 容易捨)'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구나."

금련은 거짓으로가 아니라 정말 서러워서 대안 앞에서 흐느끼며 울었다. 대안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금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나리께서 아씨를 잊으신 것이 아니라 워낙 눈코 뜰새 없이 바쁘셔서 그런답니다. 며칠 있으면 또 나리 생신이고요. 아씨께서 나리 생신을 축하하는 글을 몇 자 적어 저에게 주시면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나리께서 아씨를 생각하고 아씨에게로 금방 달려오실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좋은 신발을 한 켤레 너에게 선물해주마."

그러고는 영아에게 만두를 쪄 가지고 오게 하여 대안을 대접해주었다. 대안이 만두를 먹고 있는 동안 금련은 방으로 들어가 화선지에다 붓으로 글을 적어나갔다. 발을 씻으면서 읊은 시 구절도 적고, 만일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겠다면 사랑의 증표로 준 비단 손수건을 돌려달라는 내용도 적었다. 그 서신을 대안에게 건네면서 금련이 당부하였다.

"이 편지 전해주고 생신날 나에게 꼭 들르시라고 그래라. 내가 축하해드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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