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된 정신으로 사는 우리, 생각해 보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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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박은정 작가는 바이크 회사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었다. 사람들의 정신에 파고 든 강한 남성의 이미지다. 현대 소비사회를 풍자한 이번 전시의 주제와 통한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박은정 작가는 바이크 회사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었다. 사람들의 정신에 파고 든 강한 남성의 이미지다. 현대 소비사회를 풍자한 이번 전시의 주제와 통한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1983 아마 우안위정을 위한 사무소 K’. 이런 제목의 전시에 초대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마도 검색일 거다. ‘우안위정’ 그리고 1983년의 의미에 대해 포털 사이트에 단어들을 두드렸다면 당신은 작가에 덫에 걸린 셈이다. 검색해도 아무 것도 안 나온다.

‘우안위정’전 연 설치작가 박은정
카프카 소설, 감자박스 쌓아놓고
전시장 곳곳 벽으로 막아 동선 방해
“생각하면서 관람하게 하는게 목표”

전시를 기획한 작가 박은정씨는 “적어도 제목은 잘 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4일 개막한 후 대부분의 손님이 제목 때문에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우안위정은 ‘우리 안의 위조된 정신’이라는 뜻”이라 설명하고 “관람객을 탐정처럼 계속 생각하게 하는 게 내 목표”라고 말했다.

전시는 보는 이를 행동하게 한다. 우선 들어가자마 벽이 서 있다. 관람 동선인 왼쪽으로 가려면 몸을 이리저리 구기며 움직여야 한다.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작품들을 훤히 볼 수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의 틀에 맞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의 정신을 위조하는 것들로는 여러가지가 지목된다. 상품과 이미지를 만들어 파는 회사, 자기와 다른 인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정치인, 위기 상황에서 각종 루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등이다. 박씨는 이번 전시를 위해 세계사를 찬찬히 공부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세계사 연대기를 그려넣었다. 공부한 후 결론을 냈다. “현대에 진보된 것은 하나도 없다. 과학 분야를 제외한다면 지금은 1968년 또는 1930년대보다 좋아진 게 없다.” 진보 대신 하나의 순환을 발견했다. “남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만들고, 그러려고 돈을 모으고, 그러느라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동이 반복되더라”는 것이다.

이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봐야 한다고 전시는 주장한다. 그래서 박씨는 전시장 한쪽 방에 카프카의 소설 7개를 프린트 해 쌓아놓고 관람객이 뜯어갈 수 있게 했다. 스스로 만드는 스크랩북이다. 수동적 소비자들을 조금이나마 변하게 하는 방식이다. 또 한쪽 방에는 감자 박스를 무더기로 쌓아놓고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박씨의 출발은 그래픽·산업 디자인이었다. “냉장고에 꽃 그려넣고 한 대라도 더 파는 일을 하다보니 회의가 왔다”고 말했다. 순수예술로 방향을 틀어서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빈·런던에서 공부한 후 여성주의를 위한 작품 활동도 했다. 2014년엔 제작 중이던 작품과 소지품까지 전부 남겨놓고 갑자기 사라져버린 동료 작가에 대한 전시를 열어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 질문했다.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건 예술가의 일이 아니지만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건 나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전시를 기획한다. 작가의 유명도에 따라 미술관 내 전시장 위치가 정해지고, 나이를 밝히는 순간 서열이 확실해지는 문화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 자신의 나이도 밝히지 않는 이유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 청평면의 미스테이크뮤지엄에서 내년 2월까지 열린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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