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슨 「해프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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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대 박종철군의 고문치사사건후 신문사 편집국에 연일수십통씩 쏟아지는 시민의 항의전화는 이 문제가 단순한 한때의 감상적 차원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우리사회의 「한」 이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사건발생후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상식을 벗어난 l차발표로 의혹을 자초했던 경찰수사를『철저히 재검증해 국민들의 모든 의혹을 풀겠다』고 다짐했던 검찰은 수사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에 부친채 의사의 검안서등 일체의 증거서류공개도 거부하고 골내는 23일의 현장검증조차 범인들을 출두시키지 않고 비공개로 해치웠다.
더욱 어이없는것은 범인을 출두시키지도 않은 현장검증에 취재진을 따돌리기위해 1천명의 전경을 배치하고 창문을 종이로 가린 봉고버스를 들락거리도록 하느등 제갈량식 위장전술 (?)까지 쓴 점이다.
수사를 끝내고 사건전모를 발표키로 한 24일 아침에는 또 발표시간을 하오로 늦추려한다는 얘기까지 나돌아 보도진을 당황하게 했다.
이 무슨 해프닝인가.
「얼굴없는 비밀수사」를 고집해야만 하는 이유가 나름으로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경찰의 1차조치가 그러했듯 「불신의 자초」아닐까.
경찰의 수사엄무를 지휘·감독하는 책임을 지고있는 검찰이 경찰과 「가재와 게」 의 인상을준 대서야 고문추방을 공약한 정부의 의지가 어떻게 확고한 믿음을 줄수 있겠는가.
우리사회에서 고문이 근절되지 않았던 원천은 엄밀히 따지면 상호감시 견제와 균형이유지돼야할 경찰·검찰·법원 사법절차의 세단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때로는 한통속의 인상을 주게끔 운용돼온 때문이라 할수있다.
법에 명백히 금지된 임의동행연행·불법구금밀실수사를 검찰이 철저히 감시하고 규제했던들, 나아가 법원이 임의성없는 자백에 증거력을 인정치않는 판결을 예외없이 정립했던들 무엇때문에 누가 고문을 할것인가.
정부가 공약한 「고문추방」이 확고한 실천의지에 기초한 것이라면 첫 출발은 이번 사건의 명쾌한 규명으로 국민의 불신을 시원하게 씻는 일이다.
그것은 관련기관의 입장에선 「뼈를 깎는 고통」일 것이나 사회적으로는 불가피한 역사적 성장의 과정이다.
비록 불행한 사건이었으나 박군의 아까운 희생위에 우리가 세워야 할것은 불길 같은시민들의 공분과 희원을 하나로 모은 참다운 인권보장의「마그나 카르타」여야만한다. 검찰은 이 역사적 과업의 앞장에 서길 바란다.<문병호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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