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동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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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사람, 미국사람, 소련사람 셋이서 행복에 관해 담소를 나누고있었다.
먼저 영국사람이 얘기했다. 추운겨울날, 마침 눈이 내려 직장 일을 일찍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벽난로 앞에서 따뜻한 홍차를 마실 때 그 기분. 『이것이 행복이 아니고 뭔가.』
이 말을 듣고난 미국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월급날 봉투가 두둑해 깜짝 놀랐지.』
『보너스가 나왔군.』
『그럼 말도 안하지. 36개월짜리 자동차 월부가 끝난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단 말일세.』
소련사람이 말할 차례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은 그 정도 밖에 안되나. 언젠가 겨울밤 새벽 1시쯤 누가 우리집 대문을 막 두드리지 않겠어. 가슴을 두근거리며 나가 보았더니 KGB(비밀경찰) 요원들이야.』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그쳐 물었다.
『여기가「니콜라이」집이냐는거야. 비로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바로 건너편집을 잘못 찾아왔다고 일러주었지.』
이 소련사람이 왜 행복한지는 더이상 물을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보면 「형사소송에 관한 법규에 의하지 않는한」 어떤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거나 그 의사에 반해 답변을 강요할수 없다.
바로 「형사소송에 관한 법규」에는 영장없이 연행(체포)도, 구금도, 구속도 할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한가닥 「임의동행」을 가능하게 하는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죄를 범했거나 범했다고 의심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현장에서 물어보는 것이 「당사자에게 불리하고 교통에 방해된다고 인정되면」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서까지 동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법규라는 것도 뜯어 보면 아무나 데려갈수 있게 되어 있지는 않다. 어떤 죄를 범했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진범의 혐의를 두고하는 말이다.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진술하는 것이 불리할 경우란 생각하기 어렵다. 끌려가는 것이 불리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서」도 좀모호하기는하지만 동네 파츨소쯤을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임의동행」이 과연몇건이나 있었을까.
그러니까 고문의 근절은 제도나 법속에 있기보다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새삼 알수 있다. 우리나라사람의 행복은 더도 말고 법에 의하지 않고는 연행도, 구속도,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요구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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