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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작 『바람의넋』|김정숙<소설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바람의 넋』은 삶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천착하는 30대의 가정주부와 소시민적 평안함을 지키려는 가장의 내면적 대립을 그린 작품이다.
한때 그림에 뜻을 두었던 아내 은수는 결혼후 매몰되어 가는 꿈, 협착해지는 일상, 녹슬어 가는 의식을 수월하게 극복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렇게 평생을 사나」라는 압박감이 심해질때면 바람에 손을 잡힌 듯 집을 나간다. 은행대리인 세중은 그런 아내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처음에는 아내를 타이르고 감싸지만 명분없는 출분이 잦아지자 아내를 배척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물음을 던지며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은수의 행위가 납득할수 있는것이라면 자신이 가꾼 삶을 아내보다 소중히 여기는 세중의 태도도 얼마든지 설득력을 갖는다.
두인물의 입장이 나름대로 타당함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4부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1,3부는 세중의1인칭 시점을, 2,4부는 은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3인칭 시점을 차용하고 있다.
『은수의 가출벽은 그녀의 원체험적 고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어린시절, 자신이 고아였음을 안 이후 은수는 언제나 이곳은 내집이 아니라는 의식을 갖고 성장합니다.』
그 고아의식은 은수가 성장해 감에 따라 우주조차 존재의 집이 될수 없다는 존재론적 상실감으로까지 발전한다. 작품의 말미에서야 작가는 은수가 전쟁고아였음을 밝힌다.
오늘의 개인적 문제가 어제의 사회적 사건에 뿌리를 대고 있음을 말하려는것인가. 그것은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온 작가에게서 뜻밖에 발견되는 요소였다.
『그런 의도는 없이 그저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입니다. 내가 그 작품을 쓰던 당시의 은수는 4살무렵에 전쟁을 겪을 나이였지요. 그렇지 않아도 왜 끝까지 실존적인 차원으로 밀고나가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녹슨 족쇄들의 절그럭거림을 통해 고착된 의식을 반추케해준다는 점에 이 작품의 아름다움이 있다.
『바람의 넋』은 두 인물의 대립을 극단까지 밀어붙인후 그 팽팽한 긴장속에 독자와 인물들을 남겨둔채 끝난다.
섣부른 화해나 안이한 해결을 거부하는 작가의 태도는 삶에 대한 은수의 고집스러운 결벽성을 연상시킨다. 작가와 화자를 동일시하는 것은 가장 저급한 독서법이라지만 그것은 또한 독자가 누릴수 있는 은밀한 즐거움이고 특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비슷한 일조차 없었어요.』
그것이 단지 작품임을 밝히며 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흡사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단정지으려 하지않는 그의 소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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