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후 불과 5㎞ 떨어진 경기도 남양주시내에 각각 살면서도 13년 동안 생사를 모른 채 지내던 자매가 극적으로 만났다.
탈북자 자매 김정희(가명·47·여) 씨와 동생 정숙(가명·45·여)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 5일 오전 10시쯤 남양주시 조안면 슬로시티 문화관에서 열린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장에서 상봉했다. 이 행사는 혼자 사는 노인과 탈북 주민들에게 김장을 담아 나눠주기 위한 봉사활동이었다. 슬로시티협의회와 경기북부하나센터·남양주경찰서 등이 공동으로 열었다. 행사에는 탈북 주민 30여 명과 조안면슬로시티협의회원 20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자매는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같은 버스를 타고 가다 만났다. 버스에서 내리던 중 언니가 동생을 먼저 알아보면서 드라마 같은 재회가 이뤄졌다. 13년 만에 만난 이들은 서로 확인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만 붉혔다. 이들이 재회하는 순간 행사 참가자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함경북도 회령에 살던 자매는 13년 전 동생 정숙씨가 먼저 탈북하면서 헤어졌다. 정숙씨는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살다 3년 전 한국으로 와 남양주시 별내동에 살고 있다. 언니 정희씨는 3년 전 탈북한 뒤 지난해 한국으로 들어와 남양주시 진접읍에 거주하고 있다. 자매는 인근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1년을 지낸 것이다.
이번 만남은 극적인 우연이 더해져 자매의 기쁨은 더 컸다. 당초 언니 정희씨는 몸이 아파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었던 것. 그러나 지난달 탈북해 함께 사는 딸(24)이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참석하게 됐다고 한다. 언니 정희씨는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남이 이뤄진 어제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이 모여 밤을 세워가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남양주시 박재영 여론팀장은 “혼자 사는 노인과 탈북 주민들에게 사랑의 김장을 담아 전하려던 고운 마음이 기적 같은 상봉으로 이어져 더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김장김치 1000포기를 담아 전달했다. 탈북 주민들은 김장체험과 함께 조안면 슬로시티 문화관 관람, 북한강 물의 정원 체험 등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남양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