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다니엘의 문화탐구생활] 독일의 ‘누드 문화’ 어디까지 알고 있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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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독일’ 하면 대다수의 사람이 소시지·축구·자동차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혼탕 사우나’와 ‘누드 비치’다. 가끔 방송에서 이것에 대해 설명할 일이 생기곤 하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신나고 재미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독일의 누드 문화를 제대로 설명하려 한다.

나는 독일 사람임에도 2년 전 처음으로 혼탕 사우나에 갔다. 그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사우나를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솔직히 엄청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조용한 사우나에는 실오라기조차 걸치지 않은 남녀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상대방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맨몸으로 서로를 신경 쓰지 않고 사우나를 즐길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벗은 몸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 후 나는 한 차례 더 혼탕 사우나에 갔지만,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물론 온천이 발달한 일본에도 혼욕 문화가 존재하지만, 오늘날에는 독일만큼 대중적이지 않다. 심지어 ‘사우나의 원조’라 불리는 핀란드에도 혼탕은 흔치 않다. 그런데 왜 유독 독일에서 이러한 문화가 발달했을까. 혼탕 사우나뿐 아니라 독일에는 누드 비치도 아주 많다. 독일 사람들은 ‘FKK(Freikörperkultur) Strand’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바닷가의 맨몸 문화’라는 뜻이다. 특히 독일 동북쪽 지역에 가면, 맨몸으로 바다 수영을 즐기거나 해변에 누운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독일에 혼탕 사우나와 누드 비치가 생겨난 까닭이 문득 궁금해졌다. 독일 사람들이 야한 민족인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독일의 누드 문화는 역사가 제법 길다. 19세기에 ‘인간은 자연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자연주의가 주목받았는데, 그것이 누드 문화를 발전시켰다. ‘맨몸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연주의 사고의 핵심. 심지어 이를 생활화하기 위해 ‘맨몸으로 등산이나 산책하는 문화(Nacktwanderung)’도 생겼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체로 강이나 호수에서 수영하며 자연과 더불어 생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런 문화를 적극 허용했다.

그러나 1950~1960년대에 이르러, 독일 사회에 보수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자연주의 문화는 점차 사라졌다. ‘몸을 가려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자 혼탕 사우나와 누드 비치를 찾는 인파도 줄었다. 부모들은 자녀가 이런 문화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교육했다. 당시 남자 대학생이 월셋집을 구하려면 임대인에게 ‘여자를 집으로 초대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해야 할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혼전 성(性)관계가 이뤄질 경우 법적 신고도 가능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며 피임약 사용이 확산됐고, 그로 인해 성에 대한 청년들의 의식도 유연해졌다. 1968년 ‘성 혁명(Die Sexuelle Revolution)’이라는 개념의 등장과 함께 젊은 세대는 더 자유롭게 성생활을 즐겼다. 이 무렵 성 문화 관련 이론도 탄탄하게 구축되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1897~1957) 박사는 『성 혁명』(원제 The Sexual Revolution)에서 ‘성의 억압은 심리적으로 개인의 분노나 우울감을 키우고, 사회적으로 비민주주의적 인간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 덧붙여 ‘이러한 억압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독일의 아픈 역사(제2차 세계대전)를 심리학적 측면으로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성 혁명의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 누드 문화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독일 사회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이 있다. ‘자연주의를 향한 열망이 서독보다 동독에 더 퍼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동독이 종교적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동독 지역에 누드 비치가 많은 편이다. 더불어 1980년대 이후 피트니스가 유행하면서, 운동하고 나서 사우나를 즐기는 게 일상이 됐다. 다시 말해 ‘비교적 종교로부터 자유로웠던 동독 사회 분위기, 1968년 성 혁명, 1980~1990년대 피트니스 유행이 현재 독일의 누드 문화를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혼탕 사우나와 누드 비치가 야하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독일의 자연주의에서 출발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번쯤은 자연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 혹시라도 독일을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문화 공부’를 위해 혼탕 사우나와 누드 비치에 방문해 보시길.

글 다니엘 린데만
독일 사람? 한국 사람? 베를린보다 서울의 통인시장에 더 많이 가 본, 이제는 한국의 다니엘!1985년생 소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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