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에 3점, 2위에 2점 등 후보별 점수 주는 ‘보르다 투표’…1등만 찍는 다수결보다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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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다수결을 의심한다』 펴낸 일본 사카이 교수

남태평양에는 나우루공화국이라는 섬나라가 있다. 인구가 1만 명에 불과한 이 나라에선 3년에 한 번 국회의원을 뽑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의원 2명을 뽑는 선거구에서 유권자들은 1위에게 1점, 2위에게 1/2점, 3위에게 1/3점씩 차등해 점수를 매긴다. 그러고는 후보별 점수를 더해 총점이 높은 2명이 당선된다.

‘다우돌 투표법’이라고 불리는 이 선거제도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낯선 방식이다. 대신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인식돼 있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일본인 경제학자가 있다. 사회적 선택 이론가이자 『다수결을 의심한다』(사월의책)란 책을 쓴 사카이 도요타카(坂井豊貴·41) 게이오대 경제학부 교수다. 사카이 교수는 “다수결만큼 그 기능을 의심받지 않고 사용되며, 심지어 그 결과가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제도도 없을 것”이라며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이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투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어판을 출간한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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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도요타카 교수는 “본래 민주주의는 다수파가 아닌 만인을 위한 것”이라며 “현재의 다수결 투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사카이 교수]

경제학자로서 다수결이라는 제도에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세계 곳곳에서 다수결로 인한 문제가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찬성 51.9%, 반대 48.1%라는 근소한 차이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고, 미국에선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다수결의 문제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최근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다. 현재 극우정권이 장기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다수결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다수결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인가.
“3명 이상의 후보가 출마한 선거에서 모든 유권자의 마음속에 2위로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은 만인에게 널리 지지를 받지만 최다 득표자만 당선되는 다수결 방식에선 결코 이길 수 없다. 다수결에서 유권자는 투표용지에 ‘1위’밖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수결 선거에선 모든 유권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신경 쓸수록 불리해진다. 반대로 특정 계층을 우대하거나 비난·공격하는 후보가 승리하기 쉽다. 선거가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민의에 반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는 건가.
“2000년 미 대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당선 가망이 거의 없는 랠프 네이더가 출마를 표명했고, 결국 고어의 표를 갉아먹어 부시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그만큼 다수결이 ‘표의 분산’에 취약하다는 증거다.”

사카이 교수는 다수결의 대안으로 1770년 프랑스 과학자인 장 샤를 드 보르다가 개발한 ‘보르다 투표법’을 제안했다. ‘다우돌 투표법’과 유사한 이 방식은 유권자가 ‘1위 3점, 2위 2점, 3위 1점’처럼 각 후보에게 점수를 주고, 가장 많이 득점한 후보가 이기는 방법이다.

보르다 룰이 다수결보다 나은 이유는.
“보르다 룰대로 선거를 치를 경우 폭넓은 층에서 점수를 받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위한 정책을 내세운 후보가 유리하게 된다. 본래 민주주의는 다수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도 도입이 가능할까.
“지금의 제도가 유리한 여당에는 보르다 투표를 도입할 만한 인센티브가 없는 반면 야당에는 그 인센티브가 있을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선거의 쟁점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실제로 슬로베니아에서는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의원을 뽑을 때 보르다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며 “일부 선거에 먼저 적용해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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