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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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련의 모스크바에선 지금 『안녕하십니까?』라는 아침 인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아직 얼어죽지 않았군요?』라는 농담 인사가 유행한다.
벌써 2주일째 소련과 유럽 전역, 서아시아 일대에는 한파가 엄습하고 있다. 추위만이 아니고 폭설과 강풍도 포함하고 있다.
모스크바는 영하 39도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모스크바의 최저기온은 1940년 1월17일의 영하 42도2분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최저기온 기록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추위는 살인적이다.
그러나 발트해에 면한 레닌그라드는 12일 영하49도를 기록, 역사적인 추위의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소련에서 가장 추운 곳은 동북부의 야쿠트자치공화국, 바이칼호 주변, 이르쿠츠크 지역이다. 이곳의 기온은 영하 60도까지 내려간다.
그때문에 소련의 주력 유전지대인 서시베리아의 2천개 유정이 24시간 조업을 중단했다.
소련경제에 심각한 영향이 예상되기 시작하고 있다. 라디오의 일기예보도 맑을 것이라거나, 흐릴 것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오직 기온만 말한다.
그런 추위에서도 오후 2시에 여는 술집 앞엔 사람의 행렬이 붐빈다. 집단농장에서 농작물을 내다 파는 모스크바의 자유시장에도 사람이 웅성거린다.
입김이 금방 안경을 얼게 해서 앞을 볼수 없게 만들고, 10분쯤 서있으면 손발이 저려오고 얼굴이 아프다.
그런 혹한에도 야쿠트자치공화국에 사는 소수민족 에벤인은 『아직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으니 진짜 겨울이라고 할수는 없지요』라고 말한다.
그쯤 되니까 러시아어에는 「나무가 얼어터지는 추위」라는 말도 있다.
추위는 소련만이 아니고 유럽에도 엄습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공항은 결빙으로 폐쇄됐다. 헝가리에선 폭설로 열차가 충돌했다. 스웨덴과 폴란드도 휴교에 들어갔다. 유럽 전역에선 이미 2백명의 동사자가 났다.
눈을 보기 어려웠던 프랑스 남부와 모나코에도 눈이 내렸고, 피레네산맥에선 늑대가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고 있다.
네덜란드 해안에선 철새 수천마리가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런던의 명물인 의사당탑에 걸린 빅 벤도 부품이 얼어 붙는 바람에 맑은 소리가 쉬어버렸다는 보도다.
우리나라도 강풍과 폭설을 동반한 추위가 엄습하고 있다.
서울이 영하 15도1분, 홍천이 영하21도5분으로 이 겨울 처음 닥친 한파에 국민들이 잔뜩 움츠려고 있다.
영하 60도에도 순록 사냥에 나서는 에벤인도 있다는걸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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