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보상못할 우편물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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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국제우체국화재로 불에 탄 3만여건의 우편물가운데는 시간을 다투는 각종 긴급서류와 기록물등 값으로 따질수 없는 것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것으로밝혀졌다.
체신당국은 불에 탄 우편물에 대해 만국우편연합(UPU)의 보상규정에 따라 일률적으로 보삼할 방침이어서 보상과정에서 피해자들과의 적지않은 마찰이 예상된다. 당국은 소포의 경우 내용물에 관계없이 무게에 따라 2만5천6백50(5㎏까지)∼6만3천9백원(20㎏이하)을, 등기특급우편물의 경우는 우편료외에 1만7천4백40원을 일괄 보상할 계획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접수마감을 넘기게된 유학관계서류, 해외상사로 발송된 무역관계서류 소실로 빚어진 수출·입 지연에 따른 「신용실추」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값으로 따질수 있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지난해 명문 S대를졸업, 학교측의 특별추천으로 미국모대학에서 박사코스를 밟기위해 보낸 입학원서등이 타버린 김모군(23)의 경우 현지 학교측이 관련서류를 수차례 독촉, 지난9일 등기 속달로 보냈다가 변(?)을 당한 케이스.
김군은 『원서와 함께 보낼 재정보증서·교수추천서·영문(영문) 재산공증서등은 다시 작성할 수 있지만 해당학교의 원서를 현지로부터 다시 구하려면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며 자칫 유학을 포기해야할 처지라는것.
서울 C교회 목사인홍모씨(46)의 경우도 미국E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기위해 지난해 11월 입학서류를 갖춰 미국에 갔다가 재정보증서가 빠져 교회측에 연락, 지난9일 교회측이. 가까스로 속달로 부쳤으나 타버렸다. 홍목사의 원서접수마감일은 14일. 현지에서 재정보증인을 구하지 못하면 눈물을 머금고 돌아와야할 판.
식품제조기계류를 수입하는 명동 K오퍼상의 경우 미국의 거래사에 보낸 6개품목에 대한 주문서가 타버려 국내수입업체에서다시 주문을 받아야할 실정.
이회사 대표 이모씨(⑾)는 『빠른 시일내에 물건을 수입, 국내에 공급하는것이 우리회사의 생명인데 이번 불로 적어도 1주일이상 늦어지게 됐다』며 『주문이 취소될 경우의 손실은 제쳐두고라도 거래처와의 신용실추가 더 큰 피해』라고 말했다.
이번 피해 우편물중에는 특히 C은행이 국내수출회사로부터 받아 외국수입업체에 보낼 수출품선적서류가 다수 포함돼 있어 이들 업체들의 수출신용도에 타격을 줄 위험도 적지않다. 은행관계자에 따르면 선하증권을 재작성, 뒤늦게 수입업자의 손에 도착할 경우 수출상품의 인수가 늦어지게 되며 이 경우 LC(신용장) 조건에 위반돼 수출대금의 회수도 어려워지게 된다는것.
등기우편중에는 또 외국으로 가는 송금수표도 대량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앞으로 이의 보상을 놓고 발행은행측과 발송자·체신당국간에 한바탕 큰 마찰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종로2가에서 한복집을 하는 강모씨(40·여)는 일본의 친척·친지들로부터 구정때 입을 여자한복 7벌을 주문받아 소포로 부쳤다가 피해를 봤다.
강씨는 『현행기준대로라면 공들여 만든 70여만원어치의 피해품에 대해 2만5천여원밖에 보상받지 못한다』고 항의.
일본에 사는 친척의 부탁으로 김치·인삼과 지난해부터 촬영해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2개등을 부쳤다가 불태워버린 대구의 박모씨(30·여)도 『정성들여 담근 김치와 1년에 걸쳐 만든 테이프는 값으로 따질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며 허탈해 했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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