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퍼크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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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욕타임즈지는 요즘 「코퍼크러시」라는 새 단어 하나를 만들어냈다. 물론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코퍼크러시(corpocracy)의 글자를 새겨보면「코퍼리트 뷰로크러시」(기업내 관료주의)를 줄인 말이다.
이것은 오늘의 미국 기업들이 앓고 있는 병을 한마디로 상징한 말도 된다.
뉴욕 타임즈지는 코퍼크러시의 예를 열가지로 나열했다.
①종업원들에 대한 무감각 ②생산성을 무시한 탁상공론 ③대화를 외면하는 비밀주의 ④과다한 페이퍼워크(서류작업) ⑤회의 지상주의에 한 책임 회피 ⑥시장 지향의 외면 ⑦단기적 사고방식 ⑧기업 변신의 회피 ⑨경영진 따로, 근로자 따로의 경영 ⑩이노베이션(혁신)을 깔아뭉개는 분위기.
뉴욕 타임즈지는 또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코퍼크러시의 실상을 더욱 실감있게 보여준다.
미국 기업의 화이트 칼러(사무직)수는 어째서 일본기업보다 두배나 많은가.
어느 코피회사에서 코피를 10온스짜리 병에 담을까, 아니면 2,4,8온스짜리 병에 담을까를 결정하는데 과연 2년씩이나 걸려야하는가.
점심시간이 되어 회의가 끝나자 고위중역들은 회사에서 공짜로 주는 점심을 먹으러 중역 식당으로, 중간 간부들은 자기 돈 내고 먹는 지하 식당으로 따로 가야 하는가.
회사는 적자가 났는데, 중역들의 봉급은 오르고 목에 힘이 더들어가는 이유는 뭔가.
이런 통계도 있었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요즘 관료주의적 낭비를 억제해 연간 1천4백10억달러를 절감했다.
미국의 기업들은 기업내 관료주의에 의해 연간 무려 8천6백20억달러를 낭비하고 있다. 이것은 연방정부가 낭비한 예산의 6배나 되는 금액이다.
관리직 과다, 이노베이션 기회 손실, 공해 유발, 품질 조악, 생산성저하등이 그런 낭비의 주원인이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자연히 외국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우선 값이 싸고, 그대신 품질은 좋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토머스·매크로」교수는 오늘의 미국경제를 『외국상품을 빨아들이는 기계』에 비유할 정도다.
「대먼」재무차관은 거국적인 코퍼크러시 추방운동을 제의하고 있다.
그는 오는 88년 선거에서 그 운동이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시장지향(pro-market), 성장지향(pro-growth)의 정책을 쓰지 않으면 미국의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벌써 미국의 포드, GE, 뒤퐁, 제록스, ATT등 유명 기업은 코퍼크러시 추방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 이런 얘기들은 과연 미국만의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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