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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제 돕다가 망명했다 말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다음은 미인계를 이용한 북한의 납치미수사건 개요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교민 윤태식 (28)은 비디오제작 및 판매업을 하고 있다. 그는 86년9욀2일 상용목적으로 홍콩에 입국한후 북괴의 홍콩공작원 김옥분(34)이 접근하자 전처와 이혼중에 있던 그는 그녀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그녀가 북괴공작원인 사실을 모르고 있던 그는 그너가 86년10월16일 결혼 이후에도 재일조총련 조직과의 연락을 위해 수차례 일본을 왕래할 때에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사업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자 김옥분은 일본의 친구에게서 빌어 왔다며 5백만엔을 그에게 제공, 유나이티드 모션픽처 라는 비디오 영화 촬영사를 설립할수 있게 하였다.
북한은 이 영화사를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접근하는 거점으로 활용키 위해 총영사관이 들어 있는 동일건물인 코리아센터 빌딩에 영화사의 사무실을 마련, 1월15일 개업 예정이었다.
87년1월2일밤 돌연 일본으로부터 북괴조총련 공작원 2명이 윤태식집을 방문, 윤의 처 김옥분과 사업얘기라면서 별도의 방에서 밀담을 나누던중, 윤에게 담배를 사다 달라고 하여 윤이 담배를 사오는 사이에 김옥분과 2명의 방문객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인 1월3일 아침, 전날 방문객중 한명이 윤씨를 찾아와 그녀가 부채를 청산못해 자신의 보스가 있는 싱가포르에 가있으니 빨리 싱가포르에 가서 부채청산각서를 쓰고 그녀를데려와야 하지 않느냐고 협박하였다.
윤씨가 아내를 찾기위해 1월4일 21시35분발 UA-805편으로 싱가포르공항에 도착하자 한국말을 사용하는 낯선 여인이 윤씨의 이름을 쓴종이를 들고 대기, 자신을 김옥분의 친구라고 소개하고 샹그릴라호텔로 윤씨를 안내하였다.
그 여인은 1월5일 상오 호텔로 찾아와 싱가포르 포트빌포트가19의 주소를 주면서 찾아 가도록 요구하였으며 윤씨는 그 주소에 도착해서야 그곳이 북괴대사관임을 알게 되었다. 북괴대사관 앞에서 윤씨가 망설이고 있을 때 북괴대사관 안에서 1월4일 공항에 나타났던 여인이 나타나 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북괴대사관에서 나온것으로 보아 이 여인은 북괴대사관 공관원의 부인으로 보였다.
북괴대사관 내에서 윤씨는 자신을 대사대리 리창룡이라고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지시와 이야기를 들었다.
▲부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평양으로 가야함. 일단 동구의 유고슬라비아로 가서 안내원을 만나 같이 스위스로가서 스위스에서 정치적 망명을 선언하고 기자회견을 할것.
▲기자회견시에는 문익환목사, 유성환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 왔는데 이들이 구속되고 수사가 확대됨에 따라 신변의 위협을 받아 홍콩으로 피신, 정치적 망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할것.
▲지시대로 이행시는 부인과 재회합은 물론,홍콩에서의 사업자금을 지원해 줄것이나 불응시는 국내 가족을 살해할것임.
▲「김대중선생의 근황」을 묻고, 신상옥·최은희가 남조선에서 살해되었다고 언동할것.
윤씨는 이러한 협박지령을 받은후 도피를 결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월5일 하오 샹그릴라 호텔에서 조금 작은호텔인 칵피트호텔로 옮긴후 유고행 항공편 예약을 위해 대사대리 리창룡과 함께 시내 여행사에 가서 항공편을 알아 보았으나 항공편 예약에 실패했다.(항공사에는 윤씨 들어가고 밖에 리창룡이가 망을봐 약점 안잡히려고 같이 호텔로 돌아왔다) 다시 호텔에 돌아온 윤씨는 탈출기회를 노리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곧바로 호텔을 빠져 나와 택시를 타고 한국대사관으로 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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