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핵 정보 조작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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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라크전을 위해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조작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정보도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미 해군대학의 한 교수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미 해군대학의 조너선 폴락(사진)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해군대학 리뷰' 여름호에 "2001년까지 1~2개의 원폭을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평가해온 미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12월엔 구체적인 이유나 근거를 설명하지 않은 채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1~2개의 원폭을 제조한 것으로 평가해 왔다'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CIA는 2002년 11월엔 "92년 이전에 추출한 플루토늄을 사용해 북한이 90년대 초에 이미 핵무기를 한두개 만든 것으로 평가해 왔다"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고 폴락 교수는 지적했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3월 13일 미 상원 외교 위원회에 출석, "북한이 수개월 내에 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폴락 교수는 그 같은 정보 평가가 과장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국방당국은 99년 미국에 '북한이 우라늄 농축방식으로 핵개발을 하려 한다'는 정보를 미측에 제공했다. 그러나 CIA를 비롯한 미 정보당국은 기술적 어려움 등을 감안, 북한이 원폭 제조에 충분한 우라늄을 확보하려면 최소 3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폴락은 핵무기 전문가인 리처드 가윈 박사의 말을 인용, "북한이 우라늄 농축 방식으로 원폭을 제조하려면 6백대 이상의 고성능 원심 분리기를 최소 3년간 가동해야 한다"며 "미국 정보당국이 북한의 핵개발 능력을 부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폴락 교수는 2002년 9월 이뤄진 김정일-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 간의 정상회담이 북핵 정보가 왜곡되기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워싱턴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북.일 정상회담을 발표하자 부시 행정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워싱턴은 남한에 이어 일본마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경우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가 좁혀질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

폴락 교수는 일본의 분석가 말을 인용해 "미국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연기를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문제를 거론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틀림없다"고 전했다.

같은해 10월 이뤄진 켈리 차관보의 방북도 북핵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자세로 인해 '손발이 묶인'회담이 되고 말았다고 폴락 교수는 지적했다. 켈리는 방북에 앞서 고위 당국자로부터 구체적인 발언 내용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그 훈령 중에는 '미국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먼저 폐기하기 전에는 어떠한 대북 포용정책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는 것. 폴락은 "이 훈령 때문에 켈리는 평양에서 운신의 폭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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