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자율 맡기다 경제 악화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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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파업이 장기화하자 노사 자율에 맡기겠다던 정부가 적극 개입할 태세다.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서라도 파업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카드'는 노사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유도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가 연대투쟁 방침을 밝히며 강력히 반발해 사태를 더 꼬이게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긴급조정권은 합법파업이라도 해당 사업장이 공익사업을 하거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경우 파업을 금지하는 조치다. 장기파업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노조로선 사측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파업권을 침해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긴급조정권 행사를 아주 신중하게 한다. 1963년 도입된 이후 단 두차례만 발동했다.

정부가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처럼 강수를 검토하는 이유는 현대차 파업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파업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생산 차질액은 1조3천여억원(차량 9만대)에 이른다.

어려운 한국경제에 효자노릇을 하던 승용차 수출도 현대차 파업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연관산업 효과가 크다. 한 업체의 파업이 통계청의 산업생산활동지수를 움직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이 장기화하면 하반기 경기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해외신인도가 떨어질 것으로 정부는 우려한다.

하지만 협상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은 편이다. 현대차 노사 분규의 쟁점은 임금인상률과 주40시간 근무제 도입이다. 노조는 기본급 12만4천여원 인상을 주장하는 반면 회사 측은 9만5천원 인상을 고수하고 있다.

또 노조가 주40시간 근로를 즉각 시행하자고 나오는 데 대해 회사는 생산성 5% 향상을 전제로 정부에서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이후 시행하자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정부의 주5일 근무제 법안 처리와도 맞물려 있다.

현대차 노사가 이 제도 도입에 합의하면 법안 처리가 빨라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주5일 근무제 도입도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다음달 3일까지 잡혀 있는 노조원들의 집단 여름휴가가 끝나고 4~5일 예정된 단체교섭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잘 되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기 전에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사가 주요 쟁점에 대한 의견이 상당부분 접근한데다 양측 모두 장기 분규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가 당초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파업을 계속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차 노조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물론 이남순 한국노총위원장마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30일 성명을 내고 "이번 방침은 정부가 재계 편에서 노동계를 탄압하는 처사"라며 "강행한다면 대(對)정부 연대투쟁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여기에 강경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이원호.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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