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회복이 급하다|-1986년을 보내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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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다시 세모에 서서, 탁상의 캘린더를 거꾸로 넘겨본다. 1986년 한해동안 우리가 걸어온 궤적에는 명안이 뚜렷이 교차되어 있다.
우선 정치다.
연초에 여당이 호헌에서 개헌으로 입장을 선회하여 6월 개헌특위 구성까지 민주화의 출발이 제법 힘차다 싶었다. 그러나 권력구조로 여야가 대립함으로써 개헌정국은 대뜸 벽에 부닥치고, 자칫 어떤 파국까지 몰고 올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갔었다. 이런 정국은 살얼음 위를 걷는 형국으로 연말까지 와서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맞아서야 일단은 위기를 넘기고 협상재개의 계기를 잡기에 이르렀다.
여야간의 타협거부로 합의개헌의 전망이 불투명해진데서 느낀 국민들의 실의를 보상한 것이 3저 호황의 경제였다. 엔고, 유가와 국제금리의 하락으로 우리 경제는 물가안정을 유지하면서 1977년이래 최고라는 12.2%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수출 28.8% 증가에 힘입어 국제수지가 처음으로 적자에서 혹자로 돌아서는 역사적인 전기를 맞았다. 국민 저축률이 33%로 총투자율 30.2%를 앞지른 것도 또 하나의 「최초」로 기록된다.
그러나 차가운 통계숫자로 표시된 경제성장이나 개헌정국에서 우리의 총체적인 삶으로 눈을 돌리면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3대 호황을 누린 감격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암울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나타난다.
5월의 인천사태, 8월의 독립기념관 화재와 영동 룸살롱사건, 10월의 건국대점거 사태 등은 각각 별개의 사건같이 보이지만 전환기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진단병리 현상이 둑을 박차고 터져 나온 사건들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은 이성의 상실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주중에도 골프장을 가득 채우고 한점에 1백만원짜리 내기 골프를 친다는 부류들, 각종 퇴폐적인 향락과 사치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도덕적 허무주의 같은 것을 보는 느낌이다. 물신숭배의 명정에 빠진 그들에게 이성의 소리가 들릴 턱이 없다.
상궤를 벗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생활은 많은 성실한 사람들의 심성을 자극하여 여러 가지 범죄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우리 사회의 어느 구석을 둘러봐도 극단과 열정이 이성에 의해 충분한 제어를 받고 있지 않다고 하면 지나친 비관일까.
자유주의적 사고의 핵심은 어떤 의견의 내용에 있다기보다 그 내용을 제시하고 관철하는 방법에 있다. 의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사명을 띠고 있는 장본인들이 국회에서 중요 안건을 변칙통과시키고, 거기에 대한 난폭한 반작용이 지체없이 등장하는 풍토에서 민주주의 요체라는 타협과 관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의회민주주의 특색의 하나는 피드 백(상호영향)을 통한 자기부원역인데 계층간, 세력간에 사고의 유연성이 지금처럼 마비된 상태에서는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는 분명히 민족적 자부심을 체험했다. 잠실벌 그 열기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정신적인 건강을 되찾고 국민적인 대화합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저마다 마음속으로 자신하지 않았던가.
명암이 엇갈린 1986년을 보내면서 마음에 깊이 새겨둘 일이 있다. 3저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는 것, 민주발전이라는 「대역사」는 장거리 게임이라는 것이다. 3저 호황의 사정이 바뀌고 민주화의 여정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나도 좌절하지 않을 마음가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점이 역사의 원근법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하겠다.
올해는 어떤 의미에서는 「88년」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국민들의 의식이 가장 민감하게 달라지는 개인소득 2천 달러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발전이 바로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이른바 「예정 조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경제가 발전해도 상대적인 빈곤의식이 자동적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모든 국민의 생활의 절제가 국가에 의한 사회복지정책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이다. 국가, 법률, 정당, 각종 이데올로기는 그것 자체가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수단이다. 인간생활에서 기본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삶의 자유로운 발현이요, 나라가 할 일은 거기 필요한 조건으로서의 정치적 자유와 물질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전적인 자유주의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복지사회에서도 변함없는 원칙이다.
이런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도 우리는 보다 성숙한 의식을 필요로 한다.
극단으로 흐르기 쉬운 정열을 이성으로 제어하면서 공공질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유와 관용이 일상화될 때 우리 앞에 무리 없이 열리는 길이 바로 민주화의 길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안심입명이다. 뛰고싶은 충동이 일때 걷고, 목청을 높이고 싶을때 차분히 대화하고, 나의 의견이 거부되어 즉각 행동에 호소하고 싶을때 관용과 이해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을 생활화함으로써만 그것은 가능하다.
1986년의 체험을 살려 우리는 합리주의적인 언행으로 좌고 우고간에 극단을 피하면서 사고의 유연성을 되찾고 거칠어진 심성을 다스려야겠다. 그런 실천은 다름 아닌 이성의 복권을 전제로 하며 민주발전의 요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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