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론몰이로 사법부 흔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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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한변호사협회가 오는 9월 임명될 새 대법관 후보로 모 변호사와 부장판사를 추천키로 한 사실이 알려지자 대법원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시민단체 등에선 지난달부터 대법관 후보 시민 추천운동까지 벌여왔고 KBS에선 다음달 초 사법부 개혁에 관한 기획 프로그램을 방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대한변협이나 시민단체들이 대법원 구성에 관해 얼마든지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언론도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대법관의 임명이나 사법부의 개혁이 외부의 여론몰이식 압박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된다.

그것은 대법원이 이 사회의 최후의 양식 (良識) 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론(?)이라는 정체불명의 힘을 동원해 이 양식을 흔들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의 가치판단은 혼돈 속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일부 운동가 단체가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면서 대법관들을 보수주의자로 매도한 것은 진실에 반할 뿐 아니라 '법원 길들이기' 의도마저 엿보인다"고 한 어느 부장판사의 지적은 귀기울일 만하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우리의 헌법 절차다. 임명제청 절차가 밀실에서 이뤄졌다는 법조계 안팎의 지적에 따라 대법원은 최근 자문위원회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내규를 마련했다. 여기엔 외부 인사도 참여한다. 대신 탈락자의 명예보호 등을 위해 누가 추천됐는지는 비공개토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관의 선정을 위해 이러한 내규가 있는 만큼 정해진 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변협은 변협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대법관 추천 후보들을 실명으로 거론하고 있으니 특정 성향의 인물을 내세우려는 압박의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법부의 일은 사법부의 손에 맡겨야 한다. 국민이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해 줘야 제대로 독립된 사법부를 가질 수 있다.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론몰이를 한다면 사법부는 영원히 정치와 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