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서 개헌정국 대화로-여야협상 어떻게 진전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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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민우 총재의 민주화 7개항 주장을 신민당이 당론으로 뒷받침하고 민정당도 노태우 대표위원의 회견을 통해 적극 협상 용의를 밝힘으로써 권력구조문제로 극한 대치했던 개헌정국이 일대 전환의 고비를 맞았다.
비록 양측의 주장에 각기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있지만 여야의 분위기나 자세를 보면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성의 같은 것이 전례 없이 역력하다.
내각제와 대통령직선제가 한치도 비켜설 수없이 맞서 변칙과 파란을 다반사로 되풀이했던 정기국회 말의 파국적 현상들을 상기해본다면 최근의 움직임은 분명 큰 변화이고 여야가 이 국면을 대화분위기로 유도하기에 따라서는 종전과는 다른 차원의 개헌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민우 구상」에 대한 민정당의 접근방법은 진지하고 조심스럽다.
당내 일부에서는 합의개헌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알고 다루어야한다는 말까지 나오고있다.
민정당이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민정당의 자세가 신민당에 영향을 주어 자칫 이총재의 입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정당은 7개정의 적극협상용의를 표명하면서도 신민당의 내부사정을 주시하고있다.
민정당은 26일의 이민우·김영삼 회담, 확대간부회의, 김대중·김영삼 회담 등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후 이 총재 구상이 신민당다수의 뒷받침을 얻고있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따라서 민정당은 신민당과의 협상바탕이 어느 정도 조성돼가고 있다고 보고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협상국면으로 이끌어 신민당내부의 공개적인 내각제논의과정을 거쳐 가능하면 내각제합의 개헌에 이룰 수 없겠느냐고 기대하는 눈치다. 민정당은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경전이나 대야자극은 절대로 피한다는 입장이며, 야당의 7개정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는 공동목표라는 기본입장아래 실현의 방법론, 실현시기의 완급등을 협상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할수 있다는 것이다.
민정당으로서는 내각제합의개헌이라는 큰 목표를 외해서는 여권내의 가장 큰 금기로 되어있는 사면·복권문제에 대해서까지도 『선별협상이 가능하다』(노 대표)는 입장에서 볼 수 있듯 웬만한 양보는 다할 수 있다는 「성의표시」를 하고있다.
협상방법에 있어서도 야당측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는 제스처를 보이고있다. 대표회담·총무회담은 물론 헌특 외에도 중진회담이나 별도기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정당은 이민우 구상을 계기로 한 협상기회를 소중히 여기면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이 기회를 살려보자는 기본입장이다. 민정당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그동안 경험한 것처럼 신민당이 또 언제 어떤 계기로 당론이 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민정당으로서는 이번 기회를 살러 협상을 밀고 나가 합의개헌에 이를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고 설사 합의개헌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민당을 포함한 야권내부에 민주화방법론과 공개적인 내각제 논의가 일어남으로써 보다 모양을 갖춘 합법개헌의 여건조성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속셈을 가진 듯하다.
이처럼 선이 비교적 분명한 민정당과는 달리 신민당은 아직 언제 어떤 형식으로 대여협상에 나설지 불가측 요소가 더 많다.
이 총재는 이번의 「선민주화조건부 내각제 수용용의」발언을 통해 망외의 소득을 얻었다. 지도부의 리더석에 비판적이었던 정민회(소장의원모임)까지 이 총재의 발언을 지지했고 자신을 총재직에서 밀어내려던 김영삼씨를 스스로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동교동계를 포함한 모든 세력들이 「직선제당론」을 조건으로 7개항 제의를 지지했으며 여론의 지지도 크게 상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직선제소론을 재확인했지만 이 총재는 결과적으로 직선제외 논의불가라는 신민당의 금기를 깨고 당내에 내각제 논의의 길을 터준 셈이 됐다.
이같은 여세라면 이 총재가 즉각 민정당과 7개정 협상을 못 벌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데 신민당의 특수사정이 있다.
우선 김대중씨가 극력 반대하고 있고 김영삼씨가 김대중씨와 어느 일면 노선투쟁을 각오하면서까지 이 총재를 지원해줄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씨는 26일 『신민당의 헌특참여로 모처럼 밀어붙였던 직선제개헌 열기가 주춤했고 내년에는 군중의 힘을 동원해 기어이 직선제를 관철해야 한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김대중씨는 심지어 『신민당은 국민에게 걱정만 끼치고 일관성과 소신·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고『직선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밀어붙이자』고 말했다.
이 틈새에서 김영삼씨의 태도가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신민당 내에는 이민우 구상이 본질적으로 김영삼 구상과 같으므로 김영삼씨만 밀어주면 이 총재가 또 한번 「일을 저질러」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추측이 파다하다.
반대로 이 총재가 역부족으로 양 김씨의 제동을 뚫지 못하거나 혹시 협상테이블에 나가더라도 실질적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뒷마무리를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볼 때 신민당의 당론결집이 협상의 가장 큰 변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협상테이블이 일단 마련된 후에도 7개정의 민주화조건실현에 대한 양쪽의 해석이 협상진전의 장애요소가 될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민주화의 대상·속도· 방법 등의 구체적 논의에 들어간다면 현저한 입장차이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민정당으로서는 무작정 협상을 끌어 이른바 야당의 「춘투」를 위한 월동작전이 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으로 봐야한다. 더구나 내년3월 지구당개편대회, 5월 전당대회란 신민당의 정치일정을 고려한다면 민정당의 협상의지는 내년 1, 2월까지가 시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에 협상이 열리더라도 당대당의 합의개헌 전망은 여전히 아득한 안개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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