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달…소상공인 70% “6개월도 못 버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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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최모(43)씨는 최근 가게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한 달 만에 매출이 70% 떨어졌기 때문이다. 코스 요리는 거의 팔지 못했고 저녁 손님도 뚝 끊겼다. 최씨는 “당장 문을 닫고 싶지만 먹고 살 뾰족한 수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기중앙회, 중기 등 300곳 설문
65% “법 시행 뒤 매출 감소했다”
“현실에 맞게 기준 올려야” 목소리
대형마트는 작년 보다 매출 증가

#서울 화곡동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도씨는 김영란법 시행 후 한 달 동안 화환 10개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300개를 팔았다. 최근 일주일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도씨는 “김영란법 대상이 아닌 일반인 사이에서도 ‘선물하면 안되는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돼 동창회나 향우회에서 오던 주문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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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한 달 만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근심이 커졌다. 10곳 중 7곳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1일 발표한 화훼·농축수산 도소매업, 음식점업 관련 중소기업·소상공인(300곳) 설문 조사 결과다. 전체 응답자의 65.3%는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평균 매출 감소액은 39.7%였다. 화훼 도소매업의 타격이 가장 컸다. 전체 84%가 매출이 평균 50.5% 감소했다. 김영란법 시행 후 경영이 매우 어렵다(42%)거나 다소 어렵다(27.7%)는 응답은 69.7%였다. 이들은 ‘앞으로 6개월을 버티지 못할 것’(70.8%)으로 예상했다. 한 달을 버티기 어렵다는 응답도 12.9%였다. 경영 어려움이 계속되면 매장·직원을 축소(32.5%)하거나 폐업(29.7%)을 하겠다고 답했다.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응답도 34.9%를 차지했다.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김영란법 기준을 현실에 맞게 상향해야 한다’(48%)는 답변이 많았다. 피해 업종·품목에 대한 적용예외 설정(38%), 조속한 소비촉진 정책 마련(37.3%)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김영란법 부작용이 예상보다 크다”며 “법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형마트는 되레 김영란법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김영란법 시행 후 한 달간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 늘었다. 올 1~9월 이마트 전체 매출 신장률(4.9%)보다 높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매출이 4.6% 상승했다. 1~9월 신장률(0.6%)을 크게 웃돈다. 이마트 관계자는 “쇼핑·관광 축제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 덕도 있겠지만 식품 매출이 크게 오른 것을 볼 때 김영란법 영향으로 ‘접대’ 자리가 줄고 귀가 시간이 빨라진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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