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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인」이 술끊는 첫걸음|「단주」동맹대회서 밝힌 성공사례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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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기분 좋아 한잔, 우울해서 한잔, 눈이 오니까 한잔,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잔, 요즘 같은 연말에는 각종 모임 때문에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매일 술을 마신다는 것은 알콜 중독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사람을 철저히 황폐화시키는 알콜 중독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단주 동맹대회가 19∼20일 서울 내자호텔에서 열렸다.
남녀 알콜 중독자와 가족 등 내 외국인 1백50여명이 참가한 이모임은 AA (익명의 알콜 중독자들) 클럽이 주최한 것.
19일 발표된 알콜 중독자들의 단주성공 사례와 그 가족들의 얘기를 간추려 알콜 중독이 주는 피해와 치료지혜를 살펴본다.
Y씨 (36) 는 야간법대를 나온 은행원. 주의에서도 착실하기로 소문난 Y씨는 군에서 제대한 후 다니던 은행에 복직을 하면서 76년 직업적인 회의 (원래 고시공부를 했음)가 고개를 들어 폭주를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처음엔 체력이 뒷받침됐지만 거듭되는 폭음으로 지각·결근사례가 늘어나면서 직장의 신임을 잃었고 본의 아닌 칭병 핑계 등 자기기만도 늘더라는 것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83년 손 떨림 때문에 사무를 볼 수 없어지자 환멸을 느끼고 깊은 산 속으로 무조건 잠적해 두 달간을 버티다가 아내의 노력으로 복직, 단주를 결심하고 은행에 나갔다. 그러나 며칠만에 다시 폭음을 시작하게 됐고 좌천까지 당하자 85년 7월쯤 술만 10일 동안 먹고 자살을 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영등포역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부인의 권유로 AA클럽에 가입, 격리 수용상태에서도 술에 대한 갈구를 떨쳐버리지 못하다 유사한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단주 결심을 다짐으로써 1년 반이 지난 이제는 알콜 중독에서 벗어났다.
그뿐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빠진 사랑들을 단주로 이끄는 일에 나서게됐다고 발표하자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Y씨는 아직도 문득문득 솟구치는 술의 유혹은 사실 뿌리치기 힘든 욕구라고 고백하고 그렇다고 술좌석을 피하기보다는 참석해서 이겨내는 단주에 더 효과적이라고 경험을 소개했다.
괌에 거주하고있는 J씨(52)는 이혼까지 했던 케이스. 토목관계 사업을 하는 J씨는 73년 이민 가서 지금은 단란한 가정과 함께 안정된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가가 됐지만 그동안에 술 때문에 여러 번 실패한 경험을 가졌다고.
80년에는 부인으로부터 이혼 당해 사업도 망하고 가정도 풍비박산이 되는 아픔을 동시에 겪었다고 말할 때 여성 참석자중에는 자신의 경험과 너무 유사해서인지 손수건을 꺼내 눈언저리를 닦는 사람도 있었다.
J씨는 83년 원단 재기의 결심과 함께 괌의 AA클럽에 등록, 단주를 시작했으나 5월 서울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딱 한잔만」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옛날 상태로 다시 돌아갔었다고.
J씨는 절대로 「술을 끊었다」는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다만 「하루하루 오늘만은 술을 마시지 말자」 는 1일 결심으로 살아가는 젓이 최상의 금주지혜라고 밝혔다.
알콜 중독으로 가장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중독자의 부인이나 자녀 등 가족들.
P부인 (32) 은 『회사원이었던 남편이 심한 알콜 중독으로 격리 수용까지 당했다가 8개월 전부터 완전 금주를 시행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고 발표, 주부 관객들의 공감을 받았다.
4년 전 결혼한 P부인은 「남자란 으례 술을 마시는 것」이라는 평범한 생각으로 안심하고 있다가 잦은 지각과 결근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어느 날 갑자기 폐인이 되어버린 남편이 의처 증세까지 생겨 구타를 일삼자 이혼을 생각했었다고.
작년 8월 병원에 격리 수용됐다가 3개월 후 퇴원했으나 한달 후에 다시 원상태가 됐는데 금년 4월까지 두 번의 실패를 거쳐 현재는 착실한 금주 일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P부인은 그간 AA클럽의 AFG (알콜 중독자 가족 모임) 에 나와 교류하면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알콜 중독자는 자신의 중독사실을 절대 인정 않는다 ▲알콜 중독자는 대개 의존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부인이 직업을 가진 경우 많음) ▲단주를 아무리 오래 해도 한잔만 마시면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클럽을 운영하고있는 최성직씨는 『이모임은 스스로가 중독자임을 깊이 깨닫고 참여자들의 경험·증상을 거울삼아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가를 느끼고 상호 격려와 결심을 통해 단주를 실시한다』 고 말하고 『최종적으로는 절대자의 힘에 의지해서 알콜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도록 단계적으로 짜여진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성중 독자들의 참여가 꾸준히 늘고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모임은 상오 10시반(폐쇄모임 월∼토), 하오 5시반(공개모임·매일) 두 차례 개설되며 연락처는 (718)2317

<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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