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도 이젠"잘살고 보자"-당·정 지도부 개편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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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산 베트남도 결국은 「혁명과 전쟁」이라는 혁명주의의 옛 껍질을 벗고 「경제와 개혁」 이라는 현실주의적인 변화의 길을 택했다.
18일 폐막 된 제6차 베트남 공산당 대회에서 단행된 지도층 개편은 단순한 세대교체라는 의미를 넘어서 베트남의 변신을 예고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신임 서기장으로 선출된 「구엔·반·린」(71)이 폐막 연설에서 『이번 인사개편은 베트남의 혁명현실에 적합한 지도층 혁신』이라고 전제, 『베트남의 정치·이념적 지도방식에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선언한데서도 이같은 변화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구엔·반·린」은 『작은 「고르바초프」』라고 별명을 얻을 정도로 베트남 경제개혁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이번에 퇴진한 「트루옹·친」당 서기장(79), 「팜·반·동」수상(80), 「레·둑·토」당 이론가(76)들은 지난 7월 사망한 「레·두안」전 서기장과 함께 베트남공산당을 창당하고 56년간 이끌어온 교조적인 혁명 1세대들이다.
한편 「구엔·반·린」서기장을 정점으로 한 「보·치·콩」수상(73), 「보·반·키에트」부 수상 겸 국가기획 위원장(64) 등 이번에 당권을 장악한 보다 젊은 그룹은 베트남의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려고 노력해 온 실용주의적 경제개혁 지도자들이다.
이번 제6차 당 대회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당 정책을 채택한 것도 바로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레·두안」이 사망한 뒤 지금까지 수개월간 민족주의적이고 교조적인 노선을 견지해온 원로 혁명세대를 중심으로 한 보수 강경파와의 노선투쟁에서 개혁파가 당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퇴임하는 「트루옹·친」이 82년의 제5차 당 대회에서 채택한 목표달성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악화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된 것이다.
사실 베트남은 특히 경제재건을 중심으로 한 개혁이 시급한 실정이다.
공산화 이후 베트남은 극도의 폐쇄적 사회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백 달러 선에 머무르고 인플레이션이 연 1백%에 달하는 등 경제파탄상태에 직면해 있었다.
80년대에 들어서 소련 식 경제개혁정책을 일부 도입했으나 산업기반과 경제하부구조의 취약 등으로 인해 연간 수억 달러에 이르는 소련으로부터의 원조로 겨우 국가재정을 유지할 정도였다.
이 같은 경제위기를 맞게된 것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시대부터 지난 75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오로지 혁명과 전쟁으로 일관, 경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75년 월남의 사이공 정부를 무너뜨린 이후에도 78년 소련의 요구로 캄푸체아를 침공했고 79년에는 중공과 전쟁을 벌이느라 경제는 더욱 악화됐다.
여기에 공산주의 체제 특유의 관료적 타성으로 경제능률의 저하라는 만성적 요인이 겹쳤다. 최근 베트남 관영일간지 「난단」은 『베트남의 경제통계는 조작되고 있으며 경영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정부관료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개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6월 제8차 당 중앙위총회를 계기로 전시 경제체제를 평시 경제체제로 전환, 배급제폐지와 통화개혁 등의 조치를 했었으나 혼란만 야기한 채 실패했었다.
여기에 당 간부들의 부패현상까지 겹쳐 베트남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 지도층 교체압력이 한층 고조된 상태였었다. 이 같은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레·두안」이 아직 건재했던 금년초부터 이미 시작됐었다. 당시 「레·두안」은 개혁파인 「구엔· 반·린」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경제담당 제1부수상이었던 「포·후」등 보수파 각료 9명을 해임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이번 지도층개편은 「레·두안」이래 추진돼온 개혁노력의 사후 마무리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부수상으로 승진 된 「보·반·키에트」는 당 대회에 낸 경제보고서에서 베트남 경제는 실업·물자낭비·원자재 부족 등으로 난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투자유치를 강조함으로써 해외에 문호를 개방할 뜻도 비쳤다.
그러나 친소노선을 포기하거나 사회주의 체제자체를 바꾸지는 않을 듯 하다.
중공에서 보아왔듯이 사회주의체제에 실용주의적 정책을 추구하는 스타일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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