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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노태우, 대선 관리 위한 중립내각…21% MB, 청와대 수석 2명 빼고 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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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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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관권선거 의혹에 휩싸인 노태우 대통령(왼쪽)은 현승종 한림대 총장을 총리로 임명하고 대선 관리를 위한 중립내각을 구성했다. [중앙포토]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는 역대 정부가 모두 겪어온 일이다.

역대 대통령들 위기 때 수습 어떻게
6% YS, 총리와 장관급 10명 경질
노무현은 임기 4년 차에 12% 기록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1992년 충남 연기군수의 관권선거 폭로로 민심이 이반하자 현승종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거국중립내각을 출범시켰다. 개각 대상은 총리와 안기부장(현 국정원장), 내무·법무부 장관, 공보처 장관 등 선거 관련 부처였다. 대통령선거를 두 달 앞두고 선거 관리만 맡은 초단기 내각이었다. 거국내각 출범 몇 개월 전인 4~6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 12%를 기록했다.

김영삼(YS) 정부에선 임기 마지막 해인 97년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현철씨가 각종 이권 및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됐다. YS는 97년 2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결과로 대통령인 저의 책임”이라며 “제 자식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현철씨는 구속됐고, YS는 이수성 국무총리를 통해 내각의 일괄사퇴서를 받았다. YS는 이 총리와 한승수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장관급 10명을 경질했다. 집권 초기 90% 넘는 지지를 받았던 YS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사태 당시 지지율이 6%(한국갤럽)까지 떨어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2002년 ‘최규선 게이트’ 당시 지지율이 24%(한국갤럽)까지 내려갔다. DJ의 삼남인 김홍걸 현 더불어민주당 통합위원장이 미국 유학 중 최규선씨의 돈을 받아 게이트로 번졌다. DJ는 당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던 민주당 김한정 의원을 비밀리에 미국으로 보냈다. 김 의원은 28일 “홍걸씨가 있던 LA가 아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그냥 넘어갈 순 없다’고 보고했다”며 “DJ는 낙담하며 한동안 말도 못하더니 청와대 참모 교체와 대국민 사과, 탈당을 결정했고 홍걸씨는 재판대에 섰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실제 유고 상황이 발생한 건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다. 헌법에 따라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기까지 63일간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고 전 총리의 회고록 『국정은 소통이더라』에 따르면 그는 “가장 먼저 북방한계선(NLL)부터 챙겼다”고 했다. 경제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컨트롤타워를 맡아 당시 63일간 위기를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선 벗어났으나 점차 국정지지율이 떨어져 2006년 10~12월 한국갤럽 조사에선 12%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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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08년 ‘쇠고기 파동’ 때가 위기국면으로 꼽힌다. 그는 집권 1년 차에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 쇠고기 파동 당시 지지율은 21%(한국갤럽)까지 떨어졌다. MB는 청와대 비서진을 대거 사퇴시키면서 위기에 대응했다. 자리를 지킨 사람은 이동관 홍보수석과 국정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박재완 정무수석뿐이었다. 이 전 수석은 “MB는 당시 내각 개편도 고려했지만 가장 빠른 길을 택해 청와대에 있던 수족을 모두 잘라버렸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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