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반군, 정치공세로 「총 없는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마닐라=박병석 특파원】10일 발표된 필리핀 정부군과 공산반군과의 휴전협정을 계기로 공산반군들의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정치선전 공세가 활발해지고 있다.
공산 게릴라들의 정치조직인 민족민주전선(NDF)이 주도하는 이 「총 없는 전쟁」은 정치 우선 이라는 공산당의 원칙과 부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부 강경파와 일부 언론인등 지식계층들이 평화를 가장한 NDF의 이러한 술책을 꿰뚫어 봐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NDF는 전국적으로 정치적 색채가 짙은 정치집회를 휴전협정지지 명분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오캄포」「줌멜」 등 NDF지도자들은 전국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내 외신 기자회견을 잇달아 갖고 정부측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거나 쉽게 해결하기 힘든 난제들을 협상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측에 ①토지개혁 ②정치·경제분야에서의 외세간섭 배제 ③군부의 잔혹 행위 금지 ④실업과 빈민 구제 등 4가지를 평화협상의 기본조건으로 내세워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현지 신문들은 휴전협정 발표 첫날 NDF지도자 「오캄포」와 「줌멜」등이 무장을 한 정부군 병사와 악수를 하며 미소짓는 사진을 1면 머리에 큼지막하게 실었고 TV들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화면을 계속 방영하고 있다.
이들 NPF 지도자들은 또 11일 바탄성 사말 읍에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NPA(신인민군)정예군 72명의 경호를 받으며 마을 중심가를 행진함으로써 정부의 휴전의지를 시험해 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레토」국방 장관과 「라모스」군 참모 총장은 무장 NPA의 시위는 휴전협정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비즈니스 데이 등 일부 현지신문들은 NPA가 「총 없는 전쟁」「프로퍼갠더」을 통해 ①독재정부를 무너뜨린 평화의 사절로서 ②외세를 배제하는 민족주의자로서 ③실업과 극빈자 구제를 강조하는 서민의 대변자로서 자처하는 등 정치선전 술책으로 국민들 속에 파고 들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NDF 지도자 「오캄포」는 또 박종수·정상기씨 등 피랍된 한일개발 직원들의 석방문제와 관련, 11월22일 『석방하도록 명령했다』고 말한 것을 비롯해 2∼3차례 비슷한 발언을 계속함으로써 매스컴의 주의를 끌고 있으며 두 사람을 한국대사관에 직접 인도하겠다고 주장함으로써 NDF가 직접 당사자로 외국공관과 접촉을 시도, 자신들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한편 한국 대사관은 필리핀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한국 대사관원들이 피랍된 두 사람의 신병을 NDF로부터 직접 인수하는 것은 고려치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NDF측은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한일개발 측에 다른 요구를 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