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앞지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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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은 일본을 앞설 것인가, 이대로 뒤쳐질 것인가. 어느 점에선 「예스」, 어느 점에선「노」-.
이것은 일본 종합잡지 『문예춘추』신년호의 권두 특집에 소개된 기사의 한 구절이다. 일본 입교대의 어느 교수가 집필한 『일본은 한국에 추월 당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
이 일본교수는 우리나라 경제가 이제 「선순안」과정에 접어든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선순환」은 글자 그대로 「악순환」의 반대어다.
한국 경제의 「선순환」은 첫째 물가안정. 현재 10% 이상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2% 상승에 머물러 있다. 둘째 코스트다운. 「3저」의 영향으로 한국 제품의 원가는 내려가고, 품질은 향상되고 있다. 수출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요즈음은 한 나라의 경제력을 세가지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첫번째 기준은 첨단기술력. 그것을 대표하는 상품은 반도체다. 두번째 기준은 가공 조립력. 자동차를 들 수 있다. 세번째 기준은 소재 산업력. 철강을 얼마나 잘 만들어 내는가를 따진다. 이들은 현대산업의 「3대 신기」라고도 한다.
지금 한국의 「3대 신기」는 미국시장뿐 아니라 유럽시장과 발전도상국 시장에 급속히 『침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VTR(녹화기) 수출(86년 1∼8월)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백90% 늘어났다. 전자레인지 또한 l백26%, 퍼스널 컴퓨터 87%, 반도체 39%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동경의 아키하바라(추섭원)는 전자제품의 도떼기시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상품이 끼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역시 세계적인 화제가 될만하다.
한국의 철강이 미국시장과 중공시장에서 일본을 따돌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예들은 한국이 일본을 앞설 수 있는 「예스」의 측면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의 측면을 더 주목해야 한다. 공작기계 등 자본재를 일본으로부터 끊임없이 수입해야 하는 산업구조. 우리나라의 생산과 수출이 늘면 늘수록 일본으로부터 부품과 자본재를 더욱 더 많이 들여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얘기를 뒤집으면 우리 산업은 하루빨리 자본재와 부품의 국산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기업들의 투자활동이 더욱 더 왕성해야 한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한마디로 한국은 제조력에선 일본을 앞설 수 있는 「예스」의 상황이지만 기술력에선 금세기가 다 가도록 「노」라는 결론이었다.
일본학자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노」의 얘기는 귀담아 들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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