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준비, 충분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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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8년 실시를 목표로 한 최저임금법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국회상위를 통과함으로써 이번 회기 내에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저임금법 제정이나 노동관계법 개정은 모두가 앞으로의 경제·산업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사안들인 만큼 우리는 국회심의 과정에서 보다 철저히 연구, 검토되고 각계 각층의 의견과 이해가 폭넓게 조정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과로는 이 같은 검토와 협의과정이 매우 불충분하여 졸속의 허점을 가질까 걱정된다. 민생과 관련된 이런 중요사안들이 충분한 논의와 시간여유 없이 쫓기듯이 처리된다면 경위야 어찌되었건 바람직하지 않다.
관심의 초점이 되어온 노동관계법의 개정에서는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노조 활동에 대한 제3자 개입금지 규정이 일부 완화됨으로써 노조법의 최대 이슈중의 하나가 해소되었다.
지난 80년 개정때 채택되었던 이 유례없는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6년만에 철폐됨으로써 노조활동이 어느 정도 숨통을 틜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단체교섭의 위임도 가능하게되어 조합 운동이 종전보다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개정에서도 여전히 노조운동을 제약하는 제반요소들, 예컨대 설립요건의 완화문제나 유니온숍의 금지, 쟁의 냉각기간의 문제나 공익사업의 확대, 강제 중재제도의 확대적용 등 제반문제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에 관련된 몇 가지 문제들도 미해결로 남겨졌고 노사협의회법과 연관된 단체교섭권의 제약 등의 문제도 큰 진전이 없었다. 이런 문제들은 앞으로의 지속적인 제도 개선으로 정상화되도록 정부와 노동계가 긴밀히 협의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심사인 최저임금법은 정부가 88년 실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1년의 준비기간이 충분할지 의심스럽다. 이 제도가 국민복지와 연관된 최대의 이슈임이 분명하지만 실시의 시기와 방법, 그리고 운영여하에 따라 그 실효도가 크게 좌우됨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이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임금실태에 관련된 제반 정보와 통계들이 완벽하게 정리돼야 하고 지역별, 연령별 최저생계비와 가계동향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산업계의 다양한 경영실태분석과 유형화가 필요할 것이고, 국민 연금제를 비롯한 다른 복지제도와의 상호 연관성도 미리부터 점검해 두는 일이 필요하다.
이같은 사전준비와 현실성을 갖추지 못한 채 이 제도를 실시할 경우 오히려 보호돼야 할 저임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거나 임금의 하향동결을 유발할 가능성조차 없지 않다. 이런 결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이다.
때문에 정부로서는 실시 시한에 쫓기기보다는 충분한 사전준비에 더 역점을 두어 이 제도가 학력간·직종간·지역간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저임지대를 일소하는 본래의 입법취지에 맞도록 운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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