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게이트」와 민의 정치-금창태<편집국장 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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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이란 게이트」사건 처리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미국사회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민주적 제도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실감케 된다.
사건이 알려지자 상·하원에는 즉각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상원 정보위원회는 별도로 비밀 청문회를 열었다.
대통령까지도 소환할 수 없고 자료제출을 명령할 수 있는 초당적 전권특별검사도 곧 임명할 것이라 한다.
여기다 수많은 언론기관들이 연일사건을 추적, 집중 보도함으로써 국민여론의 방향을 이끌고 있다.
특조위 구성이나 청문회 개최를 둘러싸고 우리국회처럼 여·야가 『하자』 『못한다』하며 난장판을 벌이거나 주먹다짐을 하는 광경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선까지 미칠 듯한 낌새가 보이면 조사권에 제동이 걸리는 「성역」도 물론 존재하거나 인정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예외취급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로 진상을 한꺼물 한꺼풀씩 벗겨낸다. 마치 외과수술을 연상케 한다. 환부는 뿌리까지 파헤쳐져 병소가 적출 된다.
언뜻 보면 이 같은 까발리기 방식은 문제가 많아 보인다.
정부의 공신력이 떨어지고 국론이 분열돼 나라전체가 혼란에 휩쓸릴 위험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는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증하는 사례집과도 같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케네디」대통령 때의 쿠바 침공사건, 「아이젠하워」대통령의 U-2기 격추사건 같은 비밀공작 실패 사건 때 보여준 처리방식이 모두 한결같다.
오히려 쉬쉬하면서 덮어둘 경우 국민의 의혹은 더욱 깊어지고 정치에 대한 불신도 그만큼 심화된다. 신뢰를 못 받는 정치는 제구실을 못하고 나라만 어지럽게 만든다.
반대로 국민 대다수가 납득 할 때까지 조사가 실시되고 그 결과에 따라 응분의 책임이 지워진다면 정부에 대한신뢰는 오히려 더욱 커지고 불신도 씻어낼 수 있다. 크게는 권력의 정통성도 확보된다.
미국사회의 이러한 제도적 기능이 가동할 수 있는 것은 정책이 입안되고 수행될 때 국민의 여론수렴이 전제가 되고 국민의 의사와 합치되는 방향으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사회전체의 이해에 관계되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문제에 대한 국민의 태도·감정, 그리고 의견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시된다.
이러한 국민 다수의 의견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로 흔히 쓰이는 것이 여론조사다.
이란게이트 사건의 첫 보도가 나오자 늦을세라하고 ABC-TV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1주일 간격을 두고 ABC가 같은 문제로 여론조사를 한데이어 CBS 방송과 뉴욕 타임즈지, 그리고 해리스 조사소가 줄줄이 조사결과를 발표해 새로운 여론형성의 자료가 되고있다.
정부가 당면문제에 대해 신속히, 그리고 비밀리에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해도 정책을 결정한 다음에는 그 정당성 여부가 반드시 국민의 평가를 받도록 제도가 짜여져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국민들은 지도자가 정당한 판단과 행동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 한사람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정당한 것」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반대의견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자기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차없이 밀어 붙여 자기 주장에 국민들을 두들겨 맞추려는 지도자는 참다운 리더십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체제 아래서 정치는 국민절대다수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여론이란 것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결국 국민의 정치참여도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일수록 대립하는 정치세력들은 말로는 모두가 『여론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민심은 천심』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사회적 실체로서 여론을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의 여론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상대방을 공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멋대로 민의를 조작하고 그것을 여론이라고 내세워 이용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자유당시절 「우의」「마의」까지 동원된 우리나라의 「민의」는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최근의 헌법 개정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여·야는 서로 민의를 내세우고 있다.
여당은 『내각 책임제가 절대다수 국민의 바람』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야당은 야당대로 『대통령 직선제가 국민적 합의』라며 역시 민의를 걸고넘어진다.
여· 야 정치인들이 진실로 민의를 이렇듯 떠받들어 모신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해 스스로의 의견을 한번도 속 시원히 펴볼 기회가 없었던 국민들로서는 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도매금으로 이리 끌리고 저리 밀려다니는 「민의」에 속이 상하고 울분만 쌓인다.
사건이 터져 천지가 시끄러운데도 국민은 깜깜하기만 하다. 유신인가 뭔가 하면서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없어지더니 제5 공화국 들어 잔뜩 생색을 내며 만들어 놓은 국회의 국정조사권은 또 어찌된 영문인지 가동조차 되지 않는다.
「이·장 사건」이니 「명성사건」이니 「부천서 성 추문사건」이니 하며 궁금한 사건이 꼬리를 물어도 국회법에 엄연히 명시된 국정조사권은 단 한번도 발동된 일이 없다. 구성문제를 놓고 여·야가 치고 받는 바람에 잠이 서기도 전에 파장이 되는 전통만 쌓았다. 속상하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요즘 상황에서 민의가 무엇이며 어떻게 파악하고 그것을 또 어떻게 정치에 반영하는지 우리정치인들이 제발 좀 배웠으면 한다.
지루한 여·야의 개헌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데도 결국 민의 존중의 정신, 그것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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