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원전수주서 뺨맞고 주불한국상사에 화풀이-11, 12호기 미에 낙착되자 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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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홍성호 특파원】지난 9월말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제11호 및 제12호기 발주가 미국으로 낙착된 이후 프랑스에 진출해 있는 한국주재 상사들이 그 여파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삼성·금성·대우 등 가전 3사의 경우 연간 15만대 규모로 프랑스에 수출하는 전자레인지가 프랑스 세관의 갑작스런 규제에 묶여 통관되지 않고 있으며 대한항공은 대당 7천만 달러짜리 에어버스 3대를 조기 주문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캐나다 등과 함께 세계 유수의 원전 설비능력을 갖추고 있는 프랑스 측은 당초한국의 11, 12호기 원전수주를 낙관하고 있다가 예상과는 달리 탈락되자 한국에 대해 다분히 보복적인 성격의「기술적인 수입규제」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이라고 파리의 상사들은 풀이하고 있다.
한국의 무역 관계자들은 원전발주 결정이후 프랑스의 이 같은 태도를 예상, 지난11월초 홍성좌 상공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50여명의 대불구매 사절단까지 파견했으나 원전으로 인한 한불간의 교역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프랑스 측은 25억 달러의 원전설비(외자포션 약5억 달러) 참여 탈락 보상으로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조기주문 ▲포항제철 광양만 냉간 압연공장·산소공장 등 제철 프로젝트 (2억1천5백만 달러)참여 ▲경부선 초고속 전철사업 참여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에어버스의 경우 대한항공은 당초의 계약이 내년 4월로 되어있으며 현재의 항공기수요가 과잉상태인 점등을 들어 조기주문에 난색을 표명했고, 포항제철의 설비 또한 서독과 프랑스가 치열한 막바지 경쟁상태에 있어 예측불허이며, 경부 고속전철 사업은 보다 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한국 측 입장이어서 프랑스로서는 흡족할만한 결실이 없었다.
프랑스는 최근 교역상대국과의 심각한 무역역조를 시정하기 의해서 소련으로부터의 원유도입, 노르웨이와의 가스 장기구매 계획을 취소하는 등 눈에 띄는 조치들을 취해왔다.
프랑스는 원전설비와 관련, 관계전문가를 주한대사로 내보낼 만큼 신경을 써왔고 발주결정을 앞두고 국가원수급의 교환방문도 있었으나 한국측이 아무런 사전통보도 없이 결정한데 대해 단순한 탈락이상의 감정을 갖게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느와르」대외통상 상이 구매사절단을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가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대접받기는 처음』이라고 한말로 집약될 수 있다.
아뭏든 프랑스 측은 그후 한국산 전자레인지가 규격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통관을 거부하는 조치를 내렸다. 현재 세관에 묶인 것은 약2만대(약2백50만 달러) 이지만 이미 선적되었거나 신용장 개설로 제작중인 것을 합하면 15만대(약1천8백만 달러)는 되리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프랑스는 지난 8월19일자로 관계규정을 고쳐 수입되는 모든 일반 전기제품은 ▲EC 회원국 가운데 서독·영국·프랑스의 VD·BS, 또는 NF 등 표준규격에 맞거나 ▲프랑스 전기공업 연구소(LCIE)검사에 합격, 또는 ▲메이커의 규격시험 보증이 붙은 것만 통관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제품들은 그후에도 지금까지 대부분 마지막 항목(메이커의 보증)에 해당되어 통관시켜 왔으나 11월초부터는 세관당국이 그 이상의 규격합격을 요구, 전자레인지의 경우 통관이 보류되어 왔다는 것.
한국상사들은 같은 전자제품 가운데서도 쿼터제한이 있는 컬러TV는 통관시키면서 그같은 제한이 없어 대량수출이 가능한 전자레인지에 대해서만 규격검사를 강화하고 규격문제를 관할 부서인 공업성이 아닌 대외 통상성에서 앞장서 다루고 있는 것은 프랑스의 대외 교역정책, 적어도 대한수입정책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편 주불 한국대사관 일각에서는 원전설비로 빚어진 한불간의 교역긴장이 프랑스 측의 전자제품 수입규제로만 그치지 않고 교역의 다른 부분으로까지 확대되거나 또는 북한의 무역대표부 사건 때처럼 엉뚱한 카드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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