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는 내가 끊는다, 적이 된 두 양키스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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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년 한을 품은 시카고 컵스와 68년 만에 정상을 노리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2016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7전4승제)에서 만난다. 저주를 받은 듯 오랜 기간 WS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양팀의 대결은 '마구(魔球) 대결'로 압축된다.

시속 170㎞의 광(光)속구를 자랑하는 컵스의 좌완 아롤디스 채프먼(28)과 슬라이더가 일품인 클리블랜드 좌완 앤드루 밀러(31)의 대결이다. 채프먼과 밀러는 3개월 전까지 함께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양키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채프먼을 영입하면서 델린 베탄시스(28)-밀러와 함께 최강 불펜을 완성했다. 그러나 양키스의 문제는 선발진과 타선이었다. 7월 말까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였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7경기 이상 뒤졌다. 결국 양키스는 트레이드 마감 시한인 7월 31일 고액 연봉 선수를 내보내고, 유망주들을 스카우트했다. 채프먼과 밀러가 시장에 나오자 컵스와 클리블랜드가 재빨리 이들을 영입했다. 당시 크리스 안토네티 클리블랜드 단장은 "포스트시즌을 생각해 밀러를 데려왔다"고 밝혔다.

밀러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지명을 받았던 밀러는 '제2의 랜디 존슨'으로 불렸다. 많은 기대를 받았던 그는 6년 동안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11년간 6개팀을 떠돌며 평범한 투수로 전락한 그는 2012년 불펜 투수로 짧은 이닝만 던지면서 옛 기량을 되찾았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6차례 등판한 밀러는 11과3분의2이닝 동안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그가 잡아낸 탈삼진 21개 중 15개가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던져 잡아낸 것이다. 평균 시속 130㎞ 후반대인 그의 슬라이더는 빠르지는 않지만 분당 회전수(rpm)가 2223회로 메이저리그 평균(1958회)을 크게 웃돈다.

회전이 많이 걸리는 밀러의 슬라이더는 옆으로 휘면서 아래로도 떨어진다. 낯선 투구 궤적에 타자들이 헛스윙을 하는 경우가 잦다. 직구를 던질 때와 같은 투구폼으로 슬라이더를 던져 타자들이 배팅 타이밍을 잡는데 애를 먹는다. 그는 시속 150㎞의 빠른 직구에 간간히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며 상대 타선을 잠재우고 있다.

테리 프랑코나 클리블랜드 감독은 "우리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밀러를 마운드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코리 클루버를 제외하면 확실한 선발투수가 없는 클리블랜드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이닝을 가리지 않고 승부처에 밀러를 투입하고 있다. 밀러 뒤에는 올 시즌 32세이브를 올린 마무리 코디 앨런까지 버티고 있다. 밀러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 4경기에 등판했다. 그가 나선 경기에서 클리블랜드는 모두 이겼다.

존 레스터(시즌 19승)-제이크 아리에타(18승)-카일 헨드릭스(16승)로 이어지는 막강 선발진을 자랑하는 컵스에서도 마무리 채프먼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 2009년 7월 쿠바에서 망명한 채프먼은 이듬해 신시내티 레즈와 계약했다. 2011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며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 구속인 시속 171㎞를 찍었다. 직구 자체가 워낙 빨라 마구로 불린다. 메이저리그 초창기에는 제구가 불안했으나 점차 안정감을 찾았다.

채프먼은 컵스 이적 후 16세이브(평균자책점 1.01)를 기록하며 팀의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이끌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선 8경기에 등판해 1승3세이브,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 중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블론세이브를 하기도 했지만 평균 시속 163㎞의 직구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시즌과 달리 불펜투수의 비중이 커졌다. 전체 선발투수들의 평균 투구이닝은 5.64이닝(정규시즌)에서 5.18이닝(포스트시즌)으로 줄었다. 보통 8회를 책임지는 셋업맨이 일찌감치 경기 중반에 투입되고, 마무리 투수가 2~3이닝을 책임지기도 한다. 때문에 컵스와 클리블랜드의 불펜을 책임지는 채프먼과 밀러의 활약이 WS 승부를 가를 열쇠가 될 전망이다. WS 1차전은 오는 26일 클리블랜드의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다.

◇동지에서 적으로…밀러 VS 채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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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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