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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000만 지키자] “비혼모에겐 임대아파트 분양도 힘든 현실 달라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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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연중기획 <6부> 편견과 싸우는 비혼모들 ②

“딸 씩씩하게 키울 것” 세상에 외친 비혼모 정수진씨

‘비혼모 가정’이라 차별을 겪었고 생활도 여유롭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있어 웃음을 잃지 않는다. 비혼모 정수진씨와 딸 아정이 이야기다. 그는 “비혼모도 씩씩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수원에 사는 35세 정수진씨는 다섯 살 딸 아정이와 산다. 정확하게 말하면 결혼하지 않은 엄마, 비혼모(非婚母)다. 6년 전 남자친구와 한 달 정도 만나고 헤어졌는데 임신 5개월이 된 뒤에야 아이가 생긴 사실을 알았다. 정씨는 “낙태나 입양을 생각했다. 사회적 시선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딸을 생각해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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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는 지난 22일 서울 용산가족공원에서 다른 비혼모 10여 명과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모녀는 2인삼각·림보 등 게임을 했다. 모두가 주눅들지 말고 세상에 당당히 나서자는 자리다. 정씨는 이렇게 서기까지 자신이 겪었던 과정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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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모 정수진씨가 22일 서울 용산가족공원 놀이터에서 다섯 살 딸 아정이와 함께 놀고 있다. 이들은 이날 비혼모 단체가 진행하는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정씨는 “아정이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 김현동 기자]

“임신 후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어요. 생활비를 보태느라 임신 9개월까지 복대를 하고 편의점에서 알바도 했고요. 출산 후엔 기저귀 값이 없어 갓 태어난 아정이를 입양 보냈다가 애기가 눈에 밟혀 열흘 만에 되찾아왔어요. 애기가 얼마나 울었는지 목이 다 쉬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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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친구들의 연락이 다 끊겼다. 비혼모 시설에 입소할 수도 없었다. 20대 초반 결혼 6개월 만에 이혼한 이력 때문이다. 어렵게 기초수급자가 됐으나 생계비가 모자라 폐지·헌옷을 주웠다. 유모차에 아정이를 태워 다녔다. 정부 지원금이 80만원으로 올라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다. 주민센터에 가면 공무원들이 “독거노인이 더 불쌍하다. 빨리 취직하라”고 재촉했다. 아이도 상처를 받았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아빠가 없다”고 아정이를 놀려 유치원으로 옮겼다. 정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아정이가 든든히 옆을 지켜 준다. 처음엔 부정적이던 가족들도 이제는 아정이가 없으면 못 살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3년 전 비혼모 단체에서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상담하는 일을 시작했다. 정씨는 “비혼모도 씩씩하게 애를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정씨는 “비혼모 상담과 창업교육을 하고 싶어도 장소가 없어 못한다.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가 바라는 세상은 비혼모도 ‘그냥 엄마’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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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저출산 걱정만 하지 말고 비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게 인식을 바꿔 줬으면 합니다. 비혼모는 출산휴가 가기 어렵습니다. 비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렵고 회사 눈치도 안 볼 수 없어서죠. 왜 비혼모 가구가 신혼부부·다자녀가구보다 임대아파트 분양자격이 불리해야 하나요. ‘혼자 아이 낳고 키우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인정해 주면 안 되나요. 그렇게만 된다면 다들 힘낼 거예요.”

‘비혼모 복지사’ 꿈꾸는 정수진씨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알아
낙태·입양하려다 마음 바꿔 출산
“직장·친구 잃었지만 딸 보면 든든
아이 포기 않게 사회 인식 변해야”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서영지·황수연·정종훈·백민경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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