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악관으로 죄어드는 "이란 악령"-미 「무기 밀거래」파문 어디까지 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이란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을 현재 진행중인 행정부 자체 조사에 맡기지 말고 제3의 기관에 맡기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나흘 동안의 추수감사절 휴가동안 샌타 바바라에서 쉬면서 대책을 숙의해 온 「레이건」 미 대통령은 타임지와의 회견에서 『상어 떼들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며 자신이 처한 정치적 궁지를 절박하게 표현했다.
한편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지는 미국이 이란에 제공한 무기 총량은 「레이건」대통령이 밝힌 「비행기 한 대에 실을 정도」를 훨씬 넘어 20대 분이며 액수도 백악관이 밝힌 1천2백만 달러가 아닌 10억 달러라고 보도했다.
「레이건」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권위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직의 권위가 위협받고 있다는 심각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대 이란 무기제공과 니카라과 반군 불법지원 혐의 대상자는 「리건」백악관 비서실장과 「케이시」중앙정보국장으로 좁혀들고 있다.
이처럼 스캔들의 파도가 「레이건」대통령 자신에게로 죄어들자 의회 쪽의 행정부 수문장 격인 「로버트·돌」공화당 상원 원내총무까지도 특별의회를 소집,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현재 법무성이 실시하고 있는 자체조사를 중단시키고 이를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하면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으면 의회 내의 15개 내지 20개 위원회가 온통 이 사건을 위한 청문회를 여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지는 「미즈」법무장관이 이미 이란게이트 사건을 전담할 특별검사를 임명하도록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즈」법무장관은 「레이건」대통령의 법률 고문을 지낸 오랜 측근이기 때문에 백악관을 조사하는 당사자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이미 받아왔다.
특별 의회가 소집되거나 특별검사가 임명되게 되면 워터게이트 사건 때와 같은 과정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의회나 특별검사는 조사에 필요한 모든 문서와 인물을 소환해서 선서 하에 증언을 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통령은 「행정부의 특권」(executive privilege)을 내세워 어느 선에서 이를 거부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의회와 행정부 사이에서 법 해석을 놓고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워터게이트 때처럼 백악관이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는 인상이 짙어져 궁지에 몰리게된다.
현재 「리건」비서실장은 의회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 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부 특권」의 존재도 강조하고 있어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 내 소장파 측근과 공화당의 중진들도 출혈을 무릅쓰고 단기간에 모든 진상을 밝힌 후 새로운 시작을 하는 편이 오랫동안 밀고 당김을 통해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것보다 현명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레이건」대통령이 어느 쪽으로 방향을 정할지는 앞으로 며칠 사이에 「리건」비서실장의
해임여부와 특별검사 임명 요청여부를 놓고 어느 쪽으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분명해질 것이다.
단안을 내릴 시간은 촉박하다는 의견이 공화·민주 양당에서 다같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중진이며 상원 정보위원장인 「듀렌버거」의원은 『필요하다면 행정부가 갖고 있는 관계 문서를 압류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런 긴박감을 드러내 보였다.
이 사건으로 이미 해임된 「포인덱스터」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과 「노드」실무책임자가 관계 서류 일부를 폐기했다는 보도에 따라 시간이 늦어지면 백악관이 은폐공작을 했다는 혐의를 더 받게될 것을 공화당 측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과거 워터게이트 사건을 교훈 삼아 이번 사건을 잘못 처리한 결과가 88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쪽에서는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난 6년간 자기들이 수세에 몰려온 형세를 역전시키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제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 동안 「레이건」대통령의 개인적 인기가 엄청났기 때문에 지나치게 궁지에 물면 오히려 여론이 「고군분투하는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으로 기울 가능성이 전혀 없지도 않다는 계산에서 그런 자제의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엄청난 외교적 손실을 가져왔고 또 니카라과 쪽 공작은 위법 혐의까지 안고 있기는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이 자신의 정치적 탐욕 때문에 과오를 범한대 비해 이번 사건은 그런 흔적이 없다.
마지막 임기를 2년 남긴 「레이건」대통령이 공명심 때문에 과욕을 부렸다는 지적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의 보수파 진영은 그것을 탓하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니카라과 반군지원은 적극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와 같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민주당은 물론 선거를 걱정하는 공화당의 이익에도 부합되기 때문에 「레이건」과 백악관은 시련을 피할 길이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