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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뭔가 보여줬다"-신민「서울대회」와 앞으로의 정국-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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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주일 정국에 터질 듯한 긴장감을 조성하던 신민당의 서울 대회가 그런대로 큰 혼란 없이 중단됨으로써 정국은 새로운 장을 맞게 됐습니다.
-헌정사상 처음 보는 엄청난 공권력 발동으로 서울대회가 비록 좌절됐지만 신민당 스스로는 이번 행사가 성공이라고 하고 있어요.
-대회 자체는 치르지 못했지만 대회에 이르기까지의 정치과정, 다시 말해 서울대회를 가장 큰 정치 쟁점화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각종 대중매체의 「홍보」정부·여당의 경직, 대회저지를 위한 경찰의 유례없는 동원 등의 현상을 통해 야당의 저력과 국민의 힘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계파마다 대회에 거는 기대나 목표가 달랐기 때문에 야당 내에서도 평가에 있어서는 조금씩 뉘앙스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권은 대회가 무난히 봉쇄 된데 매우 안도하는 분위기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재야·학원 내 불순분자, 두 김씨의 연계세력 등이 적나라하게 표출됐으며 그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이 냉담했다고 보고 흡족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정부·여당은 지난 28일 당정회의에서 이미 「완벽한 봉쇄」를 자신있게 예견했다고 해요. 다음날 여권 간부들이 광범하게 참석한 만찬 예정을 그때 이미 잡았으니까요.
-이번에 여권은 서울대회를 불상사 없이 막겠다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공권력이 얼마나 튼튼한가를 과시해야한다는 적극적인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여권이 이번 기회에 힘을 보여줘 안정 희구세력을 안심케하고, 있을지도 모를 체제 내적 동요를 막아야 한다는 전략적 고려가 있었는데 이것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입니다.
그 같은 의지는 서울대회 봉쇄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저지에 필요한 이상의 대규모 병력이 동원·배치됐고 사람들이 조금만 모여도 최루탄을 발사했어요. 힘의 과시가 아닌가 하는 대목이었죠.
-신민당사도 완전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옥외 방송을 시작하면 강제수색을 집행하겠다고 경찰이 위협한 것을 보면 여권의 말대로 철저·단호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어요.
-실제로 민추협에서는 옥외방송을 시작하자마자 경찰이 강제수색을 집행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같은 현상에 대해 김영배 의원 같은 이는『압수수색 영장을 쿠퐁처럼 한장씩 뜯어서 사용하는 것 같다』고 비꼬더군요.
-그렇게 나오니 신민당은 초장부터 전의를 상실해버렸고 이미 대회 준비과정을 통해 그같은 사태를 예견했음인지 28일부터 『대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이미 다 거두었다』 는 자위성(?)발언들이 나오더군요.
-사실 신민당이 서울대회를 하기까지의 양상을 볼 때 악착같이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대회로 등이 떠밀러 갔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결과를 놓고 동교동계의 한 관계자는 『군을 제외한 전 공권력이 동원됨으로써 간접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과시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국민의 힘」(people power) 을 형성하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실패했고 또 그 형성 가능성도 제대로 시험해 보지 못 했다는 점에서 매우 불만족스럽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상도동계의 한 인사는 『현 정권이 그처럼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만큼 명백한 대성공』이라고 말했어요. 서울대회를 보는 두 계파의 시각 차는 처음부터 명백했습니다.
-이민우 총재가 대회 중지선언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월요일부터 국회에 들어가고 어떤 일이 있어도 국회와 헌특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상도동 측과는 맥락이 통하는 발언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상도동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물리력으로 대회가 무산된 직후인 만큼 상도동도 당분간 강경 입장을 보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권이 이번에 서울대회 봉쇄에 자신을 얻은 나머지 대야 자세가보다 고압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해요. 앞으로도 이번처럼 힘으로 밀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원론적 얘기일지 모르지만 정당집회를 이런 식으로 원천 봉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미국무성에서도 집회 및 언론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고 논평하지 않았습니까.
-어쨌든 정국은 서울대회라는 고비를 넘긴 건 사실인데 앞날도 지극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가 서로 힘 겨루기에 있어 무언가는 보여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으므로 격한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면 완화국면으로 접어들지 않을까요.
-진통을 겪으면서 대화를 모색하되 별 소득은 없는, 다시 말하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양상이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회 중지가 선언된 후 열린 회견에서 이민우 신민당 총재는 등원 의사를 밝히고 헌특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표명했는데 대회 무산직후에 이런 온건론을 편 데는 무슨 「사연」이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많죠.
-그러나 동교동계의 한 당직자가 『누가 그 따위 얘기를 하느냐』고 거친 반응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이 총재의 회견내용은 사전에 당내 협의가 안 됐던 것 같아요.
-특히 상도동 측도 이견을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 총재의 회견내용은 당내에 자리잡고 있는 「협상심리」를 독자적으로 대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이 총재 발언이 당내에서 소화가 될 수 있겠느냐는 점이 문제죠.
-동교동은 등원은 경색정국에 대한 돌파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으나 헌특 복귀는 말도 안된다는 입장인 것 같고, 상도동은 헌특 복귀도 찬성이지만 반드시 명분이 있어야한다는 태도인 것 같아요.
-결국 이 총재가 앞질러 수순을 제시한 셈인데 민정당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민정당은 과거에 이 총재의 대표회담 제의를 거부하는 등 급박하게 몰아가 서울대회까지 열도록 방침을 굳혀준 점을 고러, 이 총재를 「곤경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있죠. 노태우 대표도 즉각 대표회담 용의표명 등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게 희망한다 하더라도 현실 상 이 총재 발언이 당론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고, 대치상태를 계속하는 한 여야대표의 희망이 곧 현실화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헌특 재개는 민정당이 거의 간구하다시피 하는 대목인데 그 전도 역시 불투명하다고 밖에 볼 수 없지요.
-민정당은 합헌 개헌의 전망을 비관하면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충분히 노력했다는 과정을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헌특 재개를 위한 아무런 노력도 않다가 불쑥 단독발의를 할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민정당은 선택적 국민투표안이 지금껏 여론 상 자기들에게 불리했다고 보고 있으므로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를 헌특에서 논의하는 형식으로 위헌성을 홍보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벌써 12월인데 아직껏 헌특 재개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연내 단독발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관측이 유력해요.
-그렇죠.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이번 국회가 끝나고 한달은 기다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당대 당의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있으므로 연내가 되든, 내년초가 되든 독자처리에 대한 준비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고 봐야죠.
-그러나 이번 서울대회를 여야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든 이번 대회과정을 지켜본 국민들 입장에서는 언제나 이런 저급 정치에서 벗어날 것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거죠.
수많은 시민이 생업에 지장을 받고 죄 없이 고통을 느껴도 정치권에서는 아전인수격 자평만 난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야간 제비곡직 차원을 넘어 정치가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돕니다.
-특히 이런 경우 무용담에 열을 올리려는 야권의 사고방식이나 『공권력이 이렇게 세다』라고 자부심을 가지려는 여권의 사고방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이번 대회를 보면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끼리의 다툼이 점점 낮은 수준으로 흘러 물리적인 힘 겨루기 단계로까지 전락했고, 이런 정치 과정에서 국민들 생각은 하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가 계속되면 정치가 국민을 이끌기는커녕 국민의 부담이 되고 오늘의 정치와 정치인이 국민으로부터 소외되고 백안시될지도 모르는 현상이 올지도 모르죠.
-벌써 일부에서는 여도 싫고 야도 싫다는 소리가 있잖아요. <정리=안희창·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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