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감 법 개정안의 허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주말, 정가가 온통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국회 재무위는 조세감면 규제법 개정안을 제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기습적으로 처리했다. 정부·여당은 다시 한번 불필요한 국민의 오해를 받게 되었다.
지난해 연말 동 법 개정안이 변칙처리 되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이 법안의 두번째 기습처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한번쯤은 생각했어야 했다.
이 법의 개정이 그토록 절실하고 긴요한 과제라면 그 절실성과 긴요성을 다른 여느 법안보다 더 열심히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정상이다.
더구나 이번 개정의 주 내용이 법 적용 시한의 연장뿐만 아니라 기술개발 지원과 농촌지역의 창업지원, 국산 기계류 사용촉진 등 여러 당면 과제들을 포괄하고 있어 구태여 변칙 처리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논란의 초점이 되는 적용시한의 연장문제도 그렇다. 정부가 진실로 이 법의 연장 적용을 필요로 한다면 그 필요성과 정당성을 의회에서 설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작년 말 이 법의 개정이후 1년간 그 개정의 취지대로 공정하게 법을 집행했다면, 그런 집행과정을 떳떳이 국회에 밝히고, 그 성과가 의회에서 인정되었다면 시한연장의 문제는 중요한 핵심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의 가장 큰 허점은 정부 스스로 이 법의 개정이후 이루어진 집행과정과 성과를 공개하지 않은 채 시한을 연장하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정부는 이 법개정을 바탕으로 56개의 부실기업을 정리했는데 국민들은 그 결과만 알고 있을 뿐,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조건으로 정리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납세자들은 그 정리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조세혜택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지원과 혜택은 얼마나 더 지속돼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부실기업의 국민 경제적 부담이 크고, 부실의 실상과 정리의 내용이 밝혀지면 기업과 은행의 공신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만 강조했다.
그러나 수조원의 조세혜택과 금융지원이 수반되는 부실정리의 과정이 국회에서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또다시 시한을 연장하겠다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지난 1년간의 부실정리 과정에서 대기업의 편중 심화와 과잉특혜는 물론 조감법 개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불합리한 조세감면이 크게 문제되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이 법의 운용은 새로운 각도에서 재검토할 필요마저 안고 있었다.
따라서 이 법의 시한연장이 필요하다면 이 같은 법 운영 경험을 토대로 한 문제점들을 먼저 개선하고, 법 운영 실적과 성과를 떳떳이 공개한 뒤에 시한연장을 논의하는 것이 일의 당연한 순서라고 판단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