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돈내면 되잖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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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 글쎄, 장난이 심해 유리창을 깬 아이를 꾸중하니까 「깨진 유리창은 물어주면 되잖아요!」라고 대꾸해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어요.』 『한번은 교실에 있는 어항의 금붕어가 죽어 슬프냐고 물었더니 한 어린이가 「백원 짜리인데요 뭐」라고 대답을 해 충격을 받았지요.』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쌀을 한 봉지씩 가져오랬더니 어느 학생이 딱 한 숟갈을 넣어왔지 뭐예요. 이유인즉 우리도 힘들게 사는데 왜 남을 도와야하냐는 것이었어요.』최근 국민학교 교사들을 위한 한 강습회에 참석한 교사들이 주고 받은 얘기다.
어린이들은 정말 어른의 거울일까? 어린이들의 이 같은 생각은 최근 어른들에게 만연되어있는 「돈이면 뭐든지 해결된다」는 식의 금전만능주의와 물건을 아낄 줄 모르고 낭비하면서도 남의 어려움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게 한다.
「돈이 최고」라는 많은 어린이들의 생각은 2년 전 MBC가 국교생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4%가 『이세상의 일은 돈으로 결정되는 수가 많다』라고 대답한 것에도 잘 나타나 있으며 어린이들의 낭비습성은 학교의 습득물보관소에 쌓인 물건을 도통 찾아 가지 않는다는 강달원 교장(청담국교)의 발표(지난해)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아파트촌에 위치한 청담국교의 안경희 교감은 『요즘 어린이 중 작은 아파트에 사는 급우를 「달동네 아이」라고 부르면서 여유 있는 집 친구만 골라 사귀는 예도 가끔 본다』고 말하며 조길찬 교사(경기국교)는 『교내방송으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가라고 알려도 별 반응이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해외지사 주재원으로 5년간 영국에서 근무하고 돌아와 국교4학년생인 아들을 전학시킨 김용섭씨(종로구 창신동)는 『얼마 전까지는 돈을 몰랐던 아이가 요즘에는 친구들과 주전부리를 하고 장난감을 사서 함께 놀아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며 돈을 달라고 떼를 쓴다』고 안타까워한다.
이 같은 어린이들의 현상에 대해 이화여대 김재은 교수(교육심리학)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과외공부하는 등 돈으로 얻은 지식으로 입학한 세대가 요즘 국교생들의 부모가 된 만큼 「돈이 최고, 남을 누르고 이기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부모들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레 어린이들에 전해진 탓』이라고 분석한다.
김 교수는 「잘 살아보자」가 아니고 「올바르게 살자」는 식의 교육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춘재 교수(성심여대·심리학)는 『부모들이 어린이들 앞에서 돈 얘기는 가급적 삼가고 돈으로는 안 되는 가치 있는 일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돕는데 앞장을 선다면 어린이들도 금방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김영완 교사(창천국교 연구주임)와 조길찬 교사는 어린이들의 낭비습성을 막기 위해 어린이들의 저축을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학교에 가져오는 연필 등 학용품의 수를 제한하고 소지품에 이름을 쓰게 하며 사치스러운 옷은 학교에 입고오지 않도록 당부한다고 전한다.
심부름 등의 대가로 꼭 용돈을 줄 경우 행위의 동기를 금전적으로 유발할 수 있으므로 필요한 물건은 부모가 사주되 소액의 용돈을 정기적으로 주어 돈을 아끼고 짜임새 있게 쓰는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교육전문가들은 말한다. <고혜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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