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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과 무한도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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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호 24면

일러스트 강일구

방송활동을 중단했던 정형돈이 복귀를 했다. 한때 예능 ‘사대천왕’으로 활동을 했고, 무한도전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인기를 누렸다. 수많은 프로그램을 맡았던 그가 불안장애 치료를 위해 전면휴식을 선언했었다. 그 기간이 1년 가까이 이어지나 싶더니 이번에 이전에 진행하던 프로그램 MC로 복귀했다. 그런데 기다리던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의 지금을 있게 한 무한도전에 복귀하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만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불안장애를 치료해온 전문가로써 이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절묘한 선택이란 생각을 했다. 무한도전은 10년 전 기차와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애교스러운 도전으로 시작했다.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봅슬레이나 프로 레슬링에 도전하는 등 상상 이상의 업그레이드를 해왔다. 정형돈이 중국 오지의 절벽같은 좁은 길에서 가마를 메는 체험은 시청자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시청자들의 열광을 얻는 이유는 이런 엄청난 도전정신에 있다. 그러나 그걸 해내는 출연자에게는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을 것이다. 매번 신체적·정신적 한계에 다가가는 미션을 주고, 단기간 외국촬영을 하고, 어떨 때는 장기 프로젝트로 농사를 짓고 댄스까지 배워야 한다. 바로 거기에 스트레스와 불안의 핵심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정신력은 훈련과 경험에 의해 강해지기는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주어진 요구에 비해 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특히 앞날에 대한 예측 가능 여부와 자신의 조절 능력 여부가 스트레스의 주관적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측 불가와 조절의 어려움이 있을 때 스트레스는 배가돼 불안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응급조치는 일단 물러나서 쉬는 것이다. 이후 다시 시작할 때 스트레스에 대한 건강한 대처는 스스로 능력의 객관적 한계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이 잘풀릴 때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며 오는 일 마다하지 않고 하기 쉽다. 하지만 잘못하다가는 그 물에 휩쓸려 버릴 위험도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쥐고 있는 것을 과감히 포기해야 할 때가 꼭 온다. 이때 제일 큰 덩어리를 미련 때문에 놓지 못하기 쉽다. 대신 자잘한 다른 것들을 버리면서 어떻게든 견뎌보려 애쓴다. 그의 판단에 놀란 것은 가장 가치가 큰 것을 과감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가 엄청난 대인배였기 때문일까?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아쉽고 아까웠을 것이다. 또 미안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운 자리 덕분에 숨통이 크게 트였을 것이다. 미혼일 때와 달리 이제는 가정이 있으니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에 대한 고민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오랜 팬이자 정신건강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포기의 용기,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한계를 절감하며 과감한 포기의 결단을 해야 할 순간이 올 수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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