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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불편해도 부러운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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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호 29면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방송) 열풍이 불어닥친 지 꽤 됐다. 지난 수요일에는 이경규·강호동이 출연하는 ‘한끼 줍쇼’(JTBC) 프로그램 첫회를 흥미있게 보았다. 두 스타 연예인이 숫가락 하나만 들고 서울 망원동 골목길을 누비며 저녁밥 한끼를 구걸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1980년대 들어 무대예술(연극 ‘품바’)로 변하더니 이제는 TV 예능프로그램으로 재현되고 있다. 본래의 각설이 직업이 갖고 있던 밥 한끼를 향한 절박함·치열함이 유머가 깃든 대리체험으로 승화했다. 경제성장으로 진짜 각설이가 멸종한 덕에 가능해진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6·25 전쟁 몇년 후 태어나 어린 시절 거지와 상이용사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밥과 돈을 요구하던 광경을 기억하는 입장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젊은 세대와 달리 먹방 쿡방을 편히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는 뻔하다. 내 또래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어릴 때 가끔 끼니를 굶어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배탈이 나거나 다이어트 때문은 아니고 집의 식량이 떨어져서였다. 그러니 먹방 쿡방을 보노라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먹는 것 갖고 웃고 떠들다니’ 하는 거부감이 슬프게 배어나는 것이다.


해서 애초부터 미식가가 되기는 글렀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했다. 허균(1569~1618)은 자신이 맛본 온갖 음식을 다룬 책 『도문대작(屠門大嚼)』 서문에서 “나는 어렸을 때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어보았다. 커서는 부잣집에 장가든 덕분에 각종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도에 유배 가서도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민어·어란·수수엿을 보내달라고 어린애처럼 졸랐다. 대갓집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맛나고 귀한 음식을 접해보았기 때문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미식가가 되려면 어릴 때 맛을 느끼는 뇌 속의 쾌락 중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늦어도 일곱살 이전에 다양한 별미를 접하고 느껴야 평생 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단순한 탐식가를 넘어 음식에 담긴 인간과 사회까지 논할 줄 아는 미식가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니 질보다 양, 없어서 못먹던 유년기의 허기가 중년을 넘어서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나는 자격미달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가난하고 굴곡진 시대라도 많고 적고 차이일 뿐 미식가들은 분명히 있었다. 쾌락 표출을 금기시하고 절제를 앞세웠던 유교문화에 젖은 조선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마저 없었다면 요즘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한식문화는 진작에 대가 끊겼을 것이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성균관대)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 ‘18·19세기의 음식 취향과 미각에 관한 기록’은 김정희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희대의 미식가 심노숭(1762~1837)을 다루고 있다. 안 교수 스스로 “조선후기 문인의 미각에 관한 담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도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고 자부하는 연구물이다. 이에 따르면 심노숭은 술·담배·차를 무척 즐겼고 과일·모밀국수와 각종 육류·어물을 두루 탐했다. 과일 중에서도 특히 감을 좋아해 자신을 시치(枾痴, 감에 미친 바보)라 칭할 정도였다. 50세 넘어서도 감을 한번에 60, 70개를 먹을 정도였다니 대단하다. 부인상을 당한 뒤나 유배 시절에도 ‘자나깨나 오로지 음식을 어떻게 해먹을 것인가 걱정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일기는 “시루떡 생각이 간절하다” “기름장을 둘러 구운 산적을 3년동안 맛보지 못하다 오늘에야 한번 배불리 먹었다” 등 먹는 이야기로 그득하다. 쑥국도 매우 즐겼기에 부인이 죽으면서 남긴 말이 “쑥이 새로 돋거든 나를 기억해달라”는 것이었다. 심노숭 역시 부잣집에서 태어난데다 부친의 까다로운 입맛 취향까지 이어받은 타고난 미식가였다.


조선시대 미식문화의 명맥을 양반층 중에서도 소수가 이끌어왔다면 현대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식민지 피지배, 전쟁을 거친 나의 부모 세대 대다수는 성장기의 화두가 ‘생존’이었고 조금 나아졌다는 내 세대는 ‘생계’였다. 반면 지금 젊은 세대는 ‘생활’로 한층 격상되었다고 본다. 덕분에 미식가가 대량 배출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고, 먹방 쿡방 바람도 일어날 수 있었다고 시샘 섞인 추측을 해본다. 사실 먹방 열풍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불안감과 불행이 깔려 있다, 나홀로 가구 증가에 힘입은 대리만족이다, 현실에서 쾌락을 찾지 못하자 본능의 가짜 충족에 눈돌리게 됐다, 등등 걱정 깔린 분석들도 많다. 어느 말이 더 맞는지에 관계 없이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음식문화의 지평이 유사이래 최대로 넓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부럽다. 서양식 식당에 가도 종업원이 포도주 시음을 청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나에게는 특별히 느껴지는 바람직한 변화다.


노재현중앙일보플러스?단행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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