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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보는 남자] ‘미운 우리’ 아들밖에 모르는 엄마들의 수다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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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관찰 예능’이 대세다. 연애 관계의 사소한 감정을 포착했던 ‘우리 결혼했어요’(2008~, MBC) 이후 관찰 예능은 ‘육아 예능’으로 진화했다. ‘일밤:아빠! 어디가?’(2013~2015, MBC)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2013~, KBS2, 이하 ‘슈돌’) ‘토요일이 좋다:오! 마이 베이비’(2014~2016, SBS)로 이어진 육아 예능은 여전히 생명력이 길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 추세와 맞물려 ‘나 혼자 산다’(2013~, MBC)가 기획됐고, 지난 8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미운 우리 새끼’(SBS)도 연일 화제다. 평균 나이 마흔 살을 훌쩍 넘긴 연예인 아들들의 일상을 엄마가 화자가 되어 관찰하는 포맷이다.

김건모·박수홍·토니 안·허지웅 등 방송인 아들을 둔 엄마를 스튜디오 패널로 캐스팅한 것은 ‘미운 우리 새끼’ 제작진의 ‘신의 한 수’다. ‘어머니’라는 존재만으로도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셈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족, 그중에서도 애착도가 높은 모자 사이를 보여 준다. 대부분의 엄마와 아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미운 우리 새끼’의 재미는, 그 믿음을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엄마가 몰랐던 아연실색할 만한 ‘우리 새끼’의 일상. 그 은밀한 순간을 들여다보는 엄마들의 표정과 한숨, 때때로 내지르는 사자후(!)야말로 이 관찰 예능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예컨대, 토니 안의 곰팡이 핀 냉장고를 목격한 어머니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말로는 자신의 아들을 두둔하느라 “저런 음식을 막 먹어야 건강하다”고 덧붙이지만 잔뜩 찌푸린 표정은 숨길 수 없다.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은 아니지만, 훌쩍 자란 노총각 아들도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존재다. 결국 안으로 굽는 팔처럼, 신나게 자식 흉을 보다가도 어머니들은 이내 아들의 허물을 감싸고 아들의 입장에서 맞장구친다.

스튜디오의 어머니들은 내 자식만 걱정하지 않는다. “매사 의욕이 사라졌다”며 허지웅이 비뇨기과를 찾았을 때 모든 어머니가 한마음으로 걱정했다. 또한, 화장실 수건 걸이에 부딪혀 이마가 찢어진 박수홍의 상처에는 다 함께 가슴 아파했다. 이 모습은 마치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각자의 집안 사정을 터놓는 반상회 풍경과 같다. 시청자는 그 반상회 한쪽에 눌러앉아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랄까. 특이하게도 ‘미운 우리 새끼’는 웬만하면 아들 출연자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 부분은 육아 예능인 ‘슈돌’과 유사하다. ‘다시 쓰는 육아일기’라는 부제처럼 아들은 나이만 먹었지, 엄마 앞에서는 변함없이 철부지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사실상 엄마들이다. 자식 자랑과 자식 걱정으로 수다판을 벌이는 엄마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각자의 엄마를 떠올린다. 모성이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가장 큰 동력인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미운 우리 새끼’의 초점이 매회 ‘노총각 아들의 결혼’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우리 새끼’가 ‘미운’ 가장 큰 이유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서다. 물론 자식 결혼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대화 주제가 반복되니 방송 초반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서서히 지루해진다. 부모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자녀를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숙한 아이처럼 그려도 될까. 그것은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섣부른 편견이 아닐까. 앞으로 이러한 소재에서 한발 나아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이해의 폭을 넓혀 간다면, ‘미운 우리 새끼’는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진명현
노트북으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장르 불문하고 동영상을 다운로드해 보는 남자.
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애잔함이라는 정서에 취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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