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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먼저다 2부] 2. 노사 대타협 아일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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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일랜드는 '켈틱 타이거(Celtic Tiger.켈틱은 아일랜드 민족)'로 불린다. 아시아에서 급성장의 신화를 만들어낸 '네 마리 호랑이'에 빗대 붙인 별칭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의 고아''서유럽의 지진아'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지금은 당당히 세계의 강소국 대열에 들었다. 그 비결을 알아본다.

87년은 아일랜드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악순환의 나라였다. 부존자원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았고, 국내자본은 부족한데 외국자본은 들어오기를 꺼렸다. 실업률은 17%에 달했고 실질소득은 7년 사이 7%나 줄었다.

*** 야당도 국정 '초당 협력'

사정이 급박해지자 노조가 나섰다. 노조는 총리실 산하 싱크탱크인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가 제안한 사회적 협약안을 받아들였다. 협약안의 골자는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와 분규를 자제하고, 정부는 실질임금이 줄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그해 말 노사정 대표들은 '국가발전전략(Strategy for Development)'이란 협약에 서명했다.

노조는 임금인상 요구를 2%로 자제키로 했다. 당시 연평균 인플레율 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지만 일자리 창출과 실질 임금을 보장받는다면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땐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먹고 살 게 없었으니까요. 젊은이들이 전부 실업자였어요. 내 동생 세명이 모두 80년대 중반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습니다."

87년 아일랜드전국노조연합(ICTU) 사무총장으로 노조 측 대표자였던 피터 카셀(54)은 노조가 협상에 적극 나선 배경을 '구직 이민행렬'로 설명했다.

아일랜드는 79년에도 사회 협약안을 만든 적이 있다. 당시에는 노조의 반대로 시행도 못해보고 끝났다. 그러나 87년엔 달랐다. 그동안 실질소득과 일자리가 줄어드는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고질병인 정치권의 분열상도 달라졌다. 총선에서 패배한 야당(갤민족당)의 대표 앨런 듀크스(59)가 87년 9월 탈라 지역 상공인 초청 강연회에서 "여당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국정운영에 협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새한미디어는 87년 아일랜드 투자를 결심한 한국기업이다. 고(故) 이창희 회장이 현지 공장부지를 둘러보러 아일랜드를 찾았다.

투자유치전문기관인 투자개발청(IDA) 청장이 직접 마중 나왔다. 공항에서 공장부지까지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가는 데 4시간30분이 걸렸다. 李회장이 "이런 길로 물류에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다"고 한마디했다.

IDA는 당장 다음날 도로확장과 교량건설을 결정했다. 지금은 그 길은 세 시간 걸린다. 새한은 투자액(1억달러)의 45%를 보조금으로 받았다. 아일랜드의 법인세 10%는 다른 유럽지역의 3분의 1 수준이다.

IDA 전담요원은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의 집과 아이들 학교, 심지어 운전면허까지 급행으로 다 해결해 줬다. "일자리만 많이 만들어달라"는 게 IDA의 유일한 요구다.

90년대 초 직원이 4백명으로 늘자 현지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 움직임이 일었다. 이들은 서울 본사에서 "곤란하다"고 통보하자 몇 시간 뒤 "없던 얘기로 하자"며 물러났다.

2001년 말 기준으로 아일랜드 경제에서 외국인 투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35%, 제조업 생산의 50%, 총수출의 75%에 이른다.

93년부터 2001년 사이에 인구 3백만명의 작은 나라에서 일자리가 30만개나 만들어졌다. 올해 유엔이 발표한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순위(12위)에서 영국(13위)을 제쳤다.

지난 8일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ESRI)는 어두워진 경제전망을 내놨다. 올해 성장률을 2.6%, 내년엔 조금 나아진다 해도 3.1% 정도에 머무를 것으로 예측했다.

*** 실업률 17%서 3.8%로

10%가 넘는 고속성장을 해온 나라에서 2~3% 성장이란 급브레이크나 마찬가지다. 아일랜드를 먹여살려온 미국 경제와 정보기술(IT)산업의 침체, 최근 유로화의 강세 등이 원인이다. 물가.임금상승은 대외경쟁력을 떨어뜨려 외자유치도 주춤해졌다.

총리실 사회협약 담당 조지 버크(39)국장은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성장과 내실화가 필요한 단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하고 "이미 전략을 바꿔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외국기업을 무작위로 유치하는 데서 벗어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의약품이나 IT, 연구.개발(R&D) 관련 업체를 우선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더블린=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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