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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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어에서 「자살」(suicide)이란 말이 생긴 것은 17세기 중반 이후다. 라틴어의 「자기 자신」(sui)과 「죽인다」(caedo)라는 두 단어를 합친 것이다.
프랑스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7세기의 사전에서는 자살이란 말 대신 「살친」(parricide)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자살을 죄악시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자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많은 문학작품과 철학책이 자살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문호 「셰익스피어」는 그의 비극 8작품 가운데 14종류의 자살을 소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로미오와 줄리에트』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자살의 극작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발자크」의 소설 속에는 21명의 자살자가 등장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도 13명의 자살 케이스가 소개되고 있다.
「죽음」에 대한 미학은 동과 서가 다른 게 없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는 소월의 시에도 「죽음」이 자주 나온다. 어떤 연구 논문을 보면 그의 시 1백58편 가운데 32%에 해당하는 47편이 「죽음」 또는 「죽는다」는 표현을 썼다. 비슷한 이미지를 주는 「지다」 「시들다」 같은 묘사까지 포함하면 50%가 넘는다.
자살을 처음으로 학문화한 사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뒤르켐」이다. 1897년에 나온 그의 『자살론』은 자살을 다음 세 가지로 분류했다. 개인이 사회에 적응 못해서 죽는 이기적 자살, 사회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타적 자살, 그리고 사회의 돌연한 변화에 충격을 받는 무통제적 자살.
「뒤르켐」은 자살의 주원인이 사회가 한 개인을 따뜻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생긴다고 했다.
국가별로 볼 때 자살이 적은 나라는 뉴질랜드, 아일랜드, 칠레. 인구 10만명 당 년 6명 꼴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10∼20명꼴, 북구, 스위스, 일본은 25명꼴로 자살 상위국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83년 경제기획원 자료에 따르면 10만명 당 20.6명으로 사망 원인 중 아홉 번째에 속한다.
문제는 왜 자살을 하는가에 있다. 최근 몇 년간 추세를 보면 청소년들의 자살은 대부분 입시와 관련된 학업부담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취직이 어렵다, 부모의 꾸중을 들었다는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자살의 핑계를 <합리화할 논리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가 걱정스럽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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