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주식 이용 탈세 ‘족집게’로 잡아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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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대기업 회장 A씨는 자신이 보유한 계열사의 주식을 임직원 45명 명의로 관리했다. 이처럼 주식이나 부동산 등 소유 관계를 공시해야하는 재산에 대해 실소유주가 타인의 명의로 돌려놓는 것을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흔히 탈세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 A회장의 경우도 주가가 오르자 차명계좌를 통해 주식을 팔아 양도차익을 얻었다. 서류상 주식 소유주는 타인이어서 양도차익이 A씨의 과세표준(세금 부과에 기준이 되는 소득)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A씨의 이런 탈세 행위는 국세청에 덜미가 잡혔고 11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국세청, 통합분석 시스템 개발
보유현황·변동내역 촘촘히 감시
부득이한 차명은 실명 전환해줘

국세청이 명의신탁 주식(차명주식) 보유를 통한 탈세 행위 근절에 나섰다. 국세청은 국세행정시스템 엔티스(NTIS)의 정보분석 기능을 기반으로 주식 명의신탁 행위를 쉽게 찾아내 검증할 수 있는 ‘차명주식 통합분석시스템’을 만들었다고 18일 밝혔다.

이 시스템은 장기간에 걸친 주식 보유현황과 변동 내역, 각종 과세자료를 분석할 수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외부기관 자료와 연계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국세청은 대기업에 대한 주식변동조사를 통해 탈세 여부를 검증해왔는데 감시망이 보다 촘촘해진 것이다. 양병수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주식의 취득부터 양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분석해 명의신탁 혐의가 높은 자료를 쉽게 선별하고 점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명의신탁관련 탈세 적발자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702명이다. 추징액은 1조1231억원에 이른다.

국세청은 부득이하게 명의신탁을 한 경영자를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법인설립시 발기인 요건은 지난 1996년 9월 30일 이전에는 7인 이상이었고 96년 이후 3인 이상으로 줄었다가 2001년 7월부터 1인 이상으로 완화됐다. 때문에 2001년 이전에는 발기인 수를 채우고자 경영자가 가족 등의 이름을 빌려 주식을 신탁하는 경우가 있었다. 국세청은 이런 이유로 주식을 명의신탁한 중소기업(주식가액 30억원 미만) 경영자에 대해 세무조사 등의 절차 없이 간편하게 차명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국세청은 또 법인사업자 등록 때 제출하는 ‘주주 등의 명세서’에 ‘본인확인’란을 추가하고 신설법인에 대해 명의신탁 적발시 불이익과 실명전환 방법을 안내하기로 했다.

양병수 국장은 “명의신탁은 지하경제의 한 축으로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며 “탈세 혐의가 짙은 대기업·자산가를 중심으로 명의신탁 행위를 정밀 검증해 탈세 행위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라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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